에프엔시코오롱 직원들이 가벼운 회의를 할 수 있게 만든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프엔시코오롱 제공
지난 30일 서울 서초동 지티(GT)타워로 사무실을 옮긴 패션업체 에프엔시코오롱의 직원들은 아직 어리둥절할 때가 많다. 직원별로 자리가 따로 있던 이전 사무실과 달리, 새 사무실은 자율좌석제를 채택해 자기 자리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먼저 앉은 자리가 내 자리다. 임원실도 없어졌다. 사장실만 예외로 남겨뒀다.
사무실 배치도 달라졌다. 부서와 부서 사이에는 휴식을 즐기고 회의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됐다. 카페테리아와 갤러리도 있다. 패션업체답게 고객을 초청해 상품 설명회와 미니 패션쇼 등을 할 수 있는 미니 런웨이 공간도 갖췄다. 에프엔시코오롱은 자율좌석제 도입 이유에 대해 “정형화된 업무를 하지 말라는 취지”라며 “패션업체 특성상 직원들이 외부 모임에 나가 있을 때가 많아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 직원은 “자리가 따로 정해지지 않다 보니 늦게 출근하는 직원들이 임원 옆에 앉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출근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프엔시코오롱은 여성들을 위한 수유룸, 파우더룸 등을 보충할 계획이다.
‘열린 사무실’ 실험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을지로로 사옥을 옮긴 한솔제지도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보수적인 제지업체로는 이례적이다. 한솔제지는 “의사소통의 벽을 허물고, 권위의 벽을 깨자는 것이 취지”라며 “이전에는 팀장이 가운데 앉고, 팀장을 중심으로 팀원들이 앉아서 상하간 심리적인 거리가 있었는데, 이를 없애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솔제지는 자율좌석제를 통해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좋은 자리인 창가 자리에 팀장이 앉았다. 지금은 창가 쪽에 테이블을 둬, 회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창가의 좋은 자리를 직급에 상관없이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솔제지는 방해받지 않고 홀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리 부스로 만든 집중근무실도 따로 운영하고 있다. 한솔제지는 “우리보다 앞서 열린 사무실을 도입한 유한킴벌리 등의 사례를 참고한 뒤, 우리 실정에 맞춰 사무실을 꾸몄다”고 했다.
유한킴벌리의 열린 사무실은 국내 기업들은 물론이고 외국 기업들도 견학을 올 정도로 유명하다. 지난해 9월 새로 단장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본사 사무실은 ‘오픈 좌석제’를 채택해, 임직원의 90%가 출근 뒤 자유롭게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 기존 5개의 임원실도 집무실 겸 회의실로 개조해, 모든 직원에게 개방했다. 임원실 활용도를 조사해보니 근무시간의 60%가 비어 있어서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새 단장 이후 휴게실과 회의실 같은 공용 공간은 갑절로 늘어났고, 개인 공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창가 자리는 임산부 자리로 지정해, 임산부들에게 양보하도록 돼 있다.
유한킴벌리는 경기도 군포와 죽전에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센터도 운영한다. 유한킴벌리는 “1990년대 시작된 근무시간 유연화 제도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라며 “근무시간 유연화가 시간적인 것이라면 사무실을 개방적으로 쓰는 것은 공간적 유연화”라고 설명했다. 시간과 공간의 유연화가 함께 진행되는 것이라서 다른 기업에서는 쉽게 시행하기 힘들 것이란다. 유한킴벌리 홍보팀 김영일 과장은 “개인적으로 카페테리아처럼 꾸며진 라운지에서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하지만 외부 약속 등에 따라 좌석 위치는 계속 바뀐다”고 말했다.
소통 강화를 위해 자율 좌석까지는 아니더라도 칸막이를 줄이고 공용 공간을 늘리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제일기획 마케팅서비스본부는 지티타워에 입주하며 사무실을 회의실 중심으로 바꿨다. 즉석 회의가 많은 업무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에스케이케미칼은 2010년 판교로 이사를 하면서 모든 사무실 칸막이를 투명유리로 만들고, 층마다 유리 부스로 된 회의실을 마련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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