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늘며 기존 업체·영세사업자와 마찰
‘장애인 의무고용률 채우려는 꼼수’ 지적도
“숫자늘리기 급급보다 새 사업영역 열어야”
‘장애인 의무고용률 채우려는 꼼수’ 지적도
“숫자늘리기 급급보다 새 사업영역 열어야”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인 ‘웹와치’ 직원들은 얼마 전 가슴 철렁한 일을 겪었다. 에스케이씨앤씨(SK C&C)가 장애인 중심의 정보기술(IT) 사회적기업인 ‘행복한 웹 앤 미디어’를 설립한다는 언론 보도 탓이었다. 에스케이 쪽은 “장애인 눈높이에서 기업,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만들고 ‘웹 접근성 개선’ 등 특화된 정보기술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장애인들의 웹 접근성을 인증·컨설팅해주는 웹와치와 겹치는 사업이었다. 웹와치의 한 직원은 “대기업이 고군분투하는 사회적기업의 사업영역을 침범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다행히 이런 우려는 큰 갈등 없이 ‘봉합’됐다. 웹와치 쪽이 문제를 제기하자 ‘행복한 웹 앤 미디어’가 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에스케이 관계자는 “웹 접근성이란 표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우린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홈페이지 개발사업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회사는 지난 2일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개발사업은 에스케이가, 인증·컨설팅사업은 웹와치가 맡아 서로 ‘윈윈’하기로 한 것이다.
요즘 대기업들의 사회적기업 설립이 늘어나면서, 이처럼 기존의 사회적기업이나 중소 영세사업자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2007년 이후 에스케이 80여곳, 현대차 7곳, 포스코 4곳 등의 사회적기업이 설립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은 644곳에 이른다.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함께 일하는 재단’의 이명희 사회적기업팀장은 “사회적기업들 사이에는 대기업이 자본력을 앞세워 경쟁에 뛰어드는 데 대한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 태광그룹 계열사가 사회적기업 씨토크커뮤니케이션이 독점해온 청각장애인용 화상통신 서비스 시장에 뛰어든 게 대표적이다.(<한겨레> 2011년 12월14일치 2면) 에스케이는 지난 2010년 방과후학교 영역에서 사회적기업인 ‘행복한 학교’를 세울 때도, 당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던 쪽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가 설립한 장애인 운송·재활기구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인 ‘이지무브’도 2010년 설립 당시, 기존 장애인 보조기구 중소유통업체들과 장애인 콜택시 업계의 반발을 샀다. 이지무브 관계자는 “90% 수입에 의존하던 시장이라 유통업체한테 큰 피해를 주진 않는다”며 “오히려 장애아동 유모차를 개발하고 비싼 제품가격을 낮추는 등의 효과가 더 많았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활동 강화라는 긍정적인 모습 뒤에 가려져 있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들이 손쉽게 사회적기업에 접근하려는 태도다. 장애인은 대기업들이 사회적기업에 끌어들이는 단골 메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장애인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긴 쉽지 않으니, 사회적기업을 통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우는 묘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에스티엑스(STX)는 지난 연말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예그리나’라는 제빵업체를 만들어 사회적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고, 삼성에스디에스(SDS), 포스코, 에스케이 등도 모두 장애인을 고용한 표준사업장 또는 사회적기업을 두고 있다. 정부가 사회적기업 설립을 채찍질하면서, 대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 등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단 당장 눈앞의 성과에만 집착하는 탓도 있다.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수는 “사회적기업 현장에 있는 모델을 발굴해 기업이 자금만 지원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은 직접 나서 사회적기업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빚어지는 현상”이라며 “대기업들이 사회적기업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신사업 영역을 여는 구실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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