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주요 외교 서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실이 법원 판결로 확인됐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중요한 외교 서한을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무런 반성과 사과 없이 정보공개 소송에서 승소했다고만 알려 눈총을 받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재판장 오석준)는 지난 1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외교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소송 판결에서 외교부가 지난 5년간 존재 자체를 부인하던 미국 전문직 비자 쿼터 관련 서한과 관련해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미국측으로부터 받았고, 그 서한이 존재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이 비공개로 열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외교문서 수발대장에 전문직 비자쿼터 서한과 관련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보면, 김현종 개인이 보관하고 있을 뿐 외교부가 보유ㆍ관리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각하 판결했다.
핵심적인 협상이익이 걸린 외교 서한을 전직 통상교섭본부장이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이 서한은 공식적인 외교문서로도 분류되지 않았다. 국가이익이 걸린 외교 서한을 개인이 임의로 수년간 보관하고, 외교부는 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외교협상을 진행한 것이어서 자기 역할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변은 성명서를 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총체적 부실이 여지 없이 드러난 대목”이라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전문직 비자쿼터 서한 관련 행정소송 승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법원이 민변이 제기한 소를 각하해 외교부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외교 서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은 없었다. 해당 서한은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김현종 전 본부장에게 전달됐으며, 수신자는 김종훈 당시 협상 수석대표로 돼있다.
전문직 비자란 의료, 법률 등 분야의 전문인력이 미국에서 취업하는 데 필요한 비자다. 2007년 6월 김종훈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대표는 “오스트레일리아는 1만500개의 전문직 비자쿼터를 받아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수를 받아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발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외교부는 또 당시 두 나라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한-미가 주고받은 서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재판부에 제출한 외교 서한을 보면, 토니 에드슨 당시 미국 국무부 비자담당 부차관보가 ‘미 국무부는 한국이 전문직 비자 쿼터를 취득하도록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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