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막장’
20대부터 가짜 서울법대생 행세…
200억 빼돌려 밀항선 타려다 붙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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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 선착장에 어둠이 깃들었다. 검은 그림자 두 개가 정박중이던 9.5t 어선의 좁은 선실로 숨어들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두 사내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미리 배에 올라 있던 선원들도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선원들이 두 사내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푸른색 신분증엔 ‘해양경찰청’이란 단어가 박혀 있었다. 선원으로 위장하고 있던 경찰이 두 사내 중 나이가 많은 쪽의 가방을 빼앗아 열었다. 가방엔 5만원짜리 현금 1200만원과 여권이 들어 있었다. 여권에 적힌 이름은 김찬경. 몰래 배를 타고 공해로 나가 중국 어선으로 갈아탄 뒤 중국 산둥성으로 도망가려던 미래저축은행 회장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금융위원회가 솔로몬·한국·미래·한주 등 4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조처를 내리기 사흘 전이었다.
해양경찰청은 지난 3일 저녁 8시30분께 김찬경(55·사진) 회장과 그의 밀항을 주선한 박아무개(51)씨 등 5명을 밀항단속법 위반 혐의로 붙잡았다고 6일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김 회장이 밀항 직전인 3일 오후 5시께 은행 영업자본금 200억원을 인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회장은 이 중 70억원을 다시 입금했고, 나머지 130억원의 행방은 검찰이 쫓고 있다.
해경 조사 결과,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 이아무개(53)씨와 함께 밀항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저축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대출받은 인연으로 김 회장과 알게 된 이씨가 김 회장에게 밀항 전문가인 박씨 일당을 소개해줬고, 박씨 일당은 다섯달 동안 어선을 섭외하는 등 준비작업을 해왔다. 해경은 지난해 말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가 밀항을 준비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밀항 전과자들의 동향을 살피던 중 박씨 일당이 행동에 나선 것을 파악했다. 미리 구체적인 밀항계획을 입수한 경찰은 박씨 일당이 섭외한 어선의 선원으로 위장해 잠복하다 김 회장을 붙잡았다.
광산업과 건설업으로 자수성가한 김 회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림산업개발이라는 회사를 세워, 땅을 구입한 뒤 건설사와 함께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지주공동개발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1999년 제주를 기반으로 한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했고, 이후 예산저축은행·삼환저축은행·한일저축은행 등을 인수하며 빠르게 몸집을 불려 지난해 말 자산규모 기준 저축은행 업계 5위에 올랐다.
이런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가능했던 배경엔 김 회장의 독특한 성격도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인맥을 넓히기 위해 오래전부터 학력을 감쪽같이 속여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 법조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회장은 20대 때부터 서울대 법대 복학생 행세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미팅이나 학회 활동에도 참가하며 복학생 모임의 핵심 역할도 했고, 김 회장의 결혼식에는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가 주례를 서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와 변호사 여러 명이 오랫동안 김 회장을 학교 선배로 알고 지냈지만, 실제 김 회장은 이 학교에 입학한 적이 없었다. 김 회장이 과시욕이 강한 성격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금융계 인사는 “전직 총리들 이름을 대고 다니면서 힘을 과시했다”고 말했고, 최근 미래저축은행 서초지점을 방문했다는 한 증권계 인사는 “김 회장과 함께 은행에 들어가자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회장실까지 직원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인사를 하더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정권 실세 비리 의혹 사건과도 얽혀있어 앞으로 저축은행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지도 관심사다. 김 회장의 미래상호저축은행은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매장량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씨앤케이(CNK)인터내셔널의 2대 주주다.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 이명박 정부 실세들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5일 해경으로부터 김 회장의 신병을 넘겨받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7일 불법 대출 등에 따른 배임과 횡령, 밀항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김 회장의 구속 여부는 늦으면 8일 밤께 결정된다.
인천/박경만 기자, 유신재 송경화 김정필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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