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은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199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포스코를 이끌었으나 김영삼 정부의 압력으로 6개월만에 물러나야 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황경로 전 회장 인터뷰…‘권력교체기마다 사퇴 압력’
황경로 전 회장 인터뷰…‘권력교체기마다 사퇴 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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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를 전리품 취급
박태준 명예회장 없다고
아예 재벌에 팔아버릴까 걱정 퇴직임원 모임인 중우회가
정권 개입 막는 울타리 될 것
회장도 너무 오래할 생각 말고
후계자 키우는 시스템 갖춰야 지난 5월 말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는 현장 간부를 상대로 한 긴급 설명회가 열렸다. 권력 실세의 회장 인사 개입과 학교법인 포스텍의 저축은행 투자 손실, 파이시티 특혜 등 의혹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생산현장까지 동요하기 시작하자 차단에 나선 것이다. 경북 포항제철소에서도 한주 전 같은 행사가 열렸다. 최근 포스코 위기는 권력이라는 외부세력의 부당한 개입 의혹에 조직 내부의 분열이 중첩되면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포스코 안에서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한겨레>는 포스코 위기의 실상과 해법을 사심 없이 듣기 위해 적임자를 찾다가 황경로 전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그는 포스코 창립 멤버로, 퇴직임원 모임인 중우회 회장이다. 박태준 회장이 1992년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와이에스(YS·김영삼 전 대통령)와의 갈등으로 퇴진하자 그 뒤를 이어 2대 회장을 지냈다. 창업자인 박 전 명예회장이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뒤부터는 포스코의 가장 웃어른인 셈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의 압력으로 6개월 만에 회장을 그만뒀다. 1968년 설립 이후 45년 동안 끊임없이 권력의 개입에 시달려온 포스코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과 전화 연결이 된 것은 지난 29일 밤늦은 시간이었다. 황 전 회장은 최근 포스코 사태에 관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잘못 말하면 오비(퇴직임원)들이 간섭한다는 얘기만 듣는다”며 사양했다. 대일청구권 자금 일부인 7200만달러와 해외차관 5000만달러를 포함한 국민 혈세로 지어져 세계적 철강회사로 성장한 포스코가 1992~1993년 최고경영자(CEO) 연쇄교체 사태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는데 원로들이 버팀목이 돼야 하지 않느냐고 졸랐다. 황 전 회장과의 인터뷰는 이처럼 20년 만에 재연되고 있는 국민기업 포스코의 최대 위기를 걱정하는 공감 속에서 어렵게 이뤄졌다. 다음날인 30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 식당에서 만난 황 전 회장은 1930년생(82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역대 정권은 각종 이권을 챙기려 했다 -국민기업인 포스코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철강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회사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원자재값 급등과 중국의 덤핑공세, 현대제철이라는 경쟁자의 등장 등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매출 증가세가 지속되고 이익도 꾸준히 내고 있다. 경영은 기본적으로 잘하고 있다. 하지만 자꾸 언론에 회사와 관련해 안 좋은 기사가 나니까 임직원이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것 같다.” 조강(가공되지 않은 강철) 생산능력 3700만t으로 세계 6위의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한국경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4월 현재 포스코는 계열사 70개에, 자산 80조6천억원으로 재계 6위에 올라 있다. 다른 재계 상위그룹은 모두 총수가 있는 재벌이지만, 포스코는 케이티(KT)와 함께 지배주주가 없는 말 그대로 ‘국민기업’이다. 특히 정부는 단 한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다. 경제 전문가들은 포스코에 권력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포스코 사태도 결국 권력 실세들이 2009년 회장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이 발단이 됐다. 정준양 회장과 함께 시이오 후보였던 윤석만 사장은 2009년 1월29일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에서 “(권력 실세로부터) 후보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직접 폭로했다. -권력이 포스코를 여전히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포스코는 45년간 주인 없는 회사로 경영이 잘 돼왔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정부가 개입만 안 한다면 이상적인 경영시스템이다. 지금 흔들린다고 해서 과거 국영기업 시절로 되돌아가거나, 재벌 오너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 지분은 하나도 없고, 외국인 지분이 50%에 육박하는 기업에 권력이 개입하면 안 된다. 재벌들도 포스코가 주인 없는 회사여서 흔들린다고 부추기면 안 된다. 국민기업인 포스코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포스코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역대 정권은 주인 없는 포스코를 당연히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종 이권을 챙기려 했다”며 “이것이 포스코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게 된 근본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포스코 인사 개입의 배후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포스코의 전 고위 임원은 “이 전 의원이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포스코 간부들과의 한 모임에서 ‘이구택 회장이 야당 시절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며 “포스코는 이명박 정부 4년간 권력 실세들의 먹잇감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구택 회장이 임기 중에 물러난 것은 정권 실세들이 포스코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이 회장을 정리한 셈이다. 권력 실세들의 최종 목표는 포스코의 이권을 챙기는 것이다. 포스코 주변에서는 그것이 주로 포스코건설을 통해 이뤄진다고 말한다. 포스코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포스코는 나름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사회에서 감시의 눈이 많기 때문에 포스코건설을 활용한다”며 “건설업종 특성상 많은 협력사와 거래해, 이권을 챙기기도 쉽다”고 말했다. 이권을 챙기는 또다른 통로는 100여개에 이르는 포스코의 외주파트너사(협력업체)이다. 이들은 주로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포장, 정비보수 등 보조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포스코의 한 전직 임원은 “외주파트너사는 포스코 간부 출신이 회사를 그만둔 뒤 몇년간 사장을 맡았다가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게 일반적인데, 권력 실세의 줄을 잡은 사람들이 알짜배기 회사를 개인소유로 인수해 특혜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회장 교체시기는 정권 교체기와 정확히 일치 권력이 이권을 챙길 때는 옆에서 이를 도와주고 떡고물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포스코의 한 전직 임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포스코건설의 정동화 부회장과, 파이시티 사건에서 박영준 전 차관의 돈세탁 창구 혐의를 받고 있는 이동조 제이앤테크 회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코 안에서는 현실론도 제기된다. 한 임원은 “누가 포스코 회장이 돼도 정치권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며 “때로는 회사에 더 큰 손실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이권은 양보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1992~1993년 불과 1년반 사이에 포스코의 최고경영자 4명(박태준-황경로-정명식-김만제)이 잇달아 바뀌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이후 20년 만의 최대 위기다. 당시에도 권력의 개입이 원인이었는데? “박태준 회장의 퇴진은 1992년 대선에서 와이에스(YS)를 지원하지 않은 데 대한 정치보복이었다. 와이에스 정권이 들어선 뒤인 1993년에는 ‘박태준 사단’이라는 이유로 나를 포함해 7~8명이 한꺼번에 쫓겨났다.” 포스코의 최고경영자는 초대 박태준 회장을 시작으로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을 거쳐 현재의 정준양 회장까지 7번째다. 전임 회장 6명은 모두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거나 타의에 의해 물러났을 정도로 포스코의 ‘시이오 잔혹사’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회장 교체 시기의 대부분이 정권 교체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포스코가 태생적으로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992년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자당의 김영삼 대통령 후보는 박태준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와이에스는 5분만 말해보면 바닥이 드러나는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박 회장은 1992년 10월5일 포스코에서 퇴진했고, 대신 황경로 회장-정명식 부회장-박득표 사장 체제가 들어섰다. 정권은 한번 눈 밖에 난 포스코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황 회장 체제는 6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1993년 3월 주총에서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 체제가 출범했다. 정권의 보복은 이어졌다. 포스코와 박태준 사단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박 회장은 일본으로 사실상 망명을 떠났다. 국세청과 검찰은 360억원에 이르는 박 회장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냈다고 발표했고, 황 회장과 유상부 부회장은 6개월간 감옥생활을 했다. 정명식 회장-조말수 사장 체제도 내부 갈등 끝에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것은 김만제 전 재무장관이 외부에서는 처음으로 포스코 회장으로 들어오는 빌미를 줬다. 1998년 디제이피(DJP) 연합을 통해 집권한 김대중 정부에서 박태준 명예회장이 총리를 맡으면서 외부환경은 180도 바뀌었다. 결국 김만제 회장은 임기를 못 끝낸 채 물러나고 유상부 회장이 1998년 3월에 취임했다. 유 회장은 2003년 연임을 추진했는데 주총 하루 전날 돌연 사임했다. 유 회장의 사임으로 가장 선임이었던 이구택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됐다. 유 회장의 사임 이유에 대해서는 박 명예회장과 인사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었다는 설과, 정권 교체기에 외부 인사를 시이오로 선임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설, 노무현 정부의 퇴진압력설이 엇갈린다.
황 전 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역삼동의 한 식당에서 이뤄진 <한겨레>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황경로 6개월, 정명식 1년…
1년반동안 회장 무려 4번 교체
임기 채우고 떠난 회장 없어 엠비정부가 밀어준 정준양
한쪽선 “정권과 손잡은 부패세력”
경영진은 “회사 흔드는 불순세력”
외풍에서 내부 분열로 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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