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24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을 건물 보안을 맡은 에스원 직원들이 출입구에서 막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시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폐기하는 장면이 폐쇄회로텔레비전에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삼성·SK 이어 법집행 맞서
저장장치 숨기고 파일 삭제
법인·직원 ‘과태료 8500만원’
“솜방망이 제재가 불법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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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직원 ‘과태료 8500만원’
“솜방망이 제재가 불법 불러”
삼성, 에스케이(SK)에 이어 엘지(LG)그룹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 대기업들이 정부 당국의 법 집행까지 방해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공정위는 17일 엘지전자의 불공정행위 조사현장에서 소속 직원들이 조사방해를 한 행위에 대해 8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엘지전자 한국마케팅본부 소속 직원들은 지난해 3월 공정위 조사관들이 현장조사를 벌이려고 하자 부서 내 외부저장장치 8개를 거둬 임원 사무실에 숨겨놓고 문을 잠갔다. 한 부장급 직원은 외부저장장치에 보관된 컴퓨터 파일을 전문프로그램을 사용해 삭제했다가 적발됐다. 공정위는 엘지전자에 5000만원을, 관련 직원 3명에 3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올해 들어 대기업들의 공정위 조사방해에 대해 제재가 이뤄진 건 지난 3월의 삼성전자, 지난 7월 초의 에스케이씨앤씨(SKC&C)에 이어 세번째다. 에스케이씨앤씨는 지난해 7월 임직원들이 사전모의를 거쳐 공정위가 이미 확보한 증거자료를 기습적으로 탈취해 폐기하는 대담한 행동을 저질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수원사업장에 대한 휴대전화 가격 부풀리기 사건 조사과정에서 담당부서 임직원과 보안담당 직원, 용역업체 직원들이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공정위 조사관 출입저지, 관련자료 폐기, 컴퓨터 교체, 조사회피 등을 일사분란하게 행동에 옮겼다. 이들은 모두 재계 1~4위 그룹들이다. 1998년 이후 15년 동안 대기업들이 공정위 조사방해로 제재를 받은 사건은 모두 18건인데, 이 가운데 30대 그룹이 83%를 차지한다. 그룹별로는 삼성이 7건으로 가장 많고, 씨제이(CJ) 3건, 에스케이 2건, 현대차와 엘지, 현대 각각 1건 차례다.
재벌들의 조사방해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제재 수위가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조사방해에 대해 법인에는 최대 2억원까지, 관련 임직원에게는 최대 50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기업들로서는 조사방해를 통해 법위반 은폐에 성공할 경우 수천억,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현 제재수준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 공정위 노상섭 시장감시총괄과장은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6월 이후 발생한 중대한 조사방해에 대해서는 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엘지 구본무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올해 초 직접 법위반 재발방지와 책임자 엄벌 방침을 밝혔지만, 재벌들의 준법경영 의지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공정위가 해당 직원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했고, 회사의 조직적 행위가 아닌 만큼 직원에게 추가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준법경영 담당 임원이 조사방해를 주도해 충격을 줬던 에스케이씨앤씨는 해당 임원에 대한 징계 없이 업무 영역 조정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해당 임원 2명에 대해 감봉조처를 취했지만, 관련 업무는 유지했다.
재벌 총수들의 불법 행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준법 의식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기원 한국방송대 교수(경제학)는 “재벌 총수들의 불법을 봐주다 보니 기업과 임직원들도 불법에 둔감한 것이 현실”이라며 “재벌기업과 임직원의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재벌 총수의 배임·횡령에 대한 최저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은 최근 재벌 총수의 거액 횡령·배임에 대해 최저형량을 7년 이상으로 높여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재계는 ‘대기업 때리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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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LG)전자는 불공정 행위 조사 현장에서 소속 직원들이 조사 방해를 한 혐의로 과태료 8500만원을 부과받았다. 당시 공정위는 엘지전자가 계열 유통회사인 하이프라자에 전자제품을 지방 대리점보다 부당하게 싼값에 공급한다는 것을 조사하는 과정이었다. 사진은 한 하이프라자 매장 모습.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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