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왼쪽)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증권사 “다른 증권사 호가 물어보고 협회에 대충 보고”
은행들 CD조달자금 2% 불과…단기금리 지표기능 상실
‘싼 예금 비싼 대출’ 가능성 높지만 소비자 피해는 뒷전
은행들 CD조달자금 2% 불과…단기금리 지표기능 상실
‘싼 예금 비싼 대출’ 가능성 높지만 소비자 피해는 뒷전
‘CD금리 조작 의혹’ 파문 확산
신용으로 먹고사는 금융권이 신용의 추락으로 위기에 놓였다. 양도성예금증서(CD)의 유통수익률(금리) 조작 의혹 탓이다.
금융시장에서 금리란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무수한 참여자들끼리 밀고 당기기한 결과물이어야 함에도 지표 노릇을 하는 시디금리의 결정 구조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있다. 10개 증권사는 매일 하루 두차례씩 시디금리를 금융투자협회에 보고하고, 협회는 이 가운데 최고·최저치를 빼고 가중평균한 값을 고시한다. 하지만 거래가 없는 날에도 “전날 고시금리나 다른 증권사의 호가를 물어봐서 협회에 대충 보고하고 있다”는 게 여러 증권사 담당자들의 전언이다. 공정위로서는 담합의 정황으로 판단할 수 있는 행위다.
한 대형증권사의 간부는 “시디 시장을 육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죽이면서 대체수단을 개발하지도 않았다”며 책임을 정부 탓으로 돌렸다. 증권사는 시장금리를 점검해야 하는 금융당국과 협회의 요구에 따랐을 뿐이라는 얘기다.
억울하다는 반응은 은행에서도 나오고 있다. 시디 거래가 급감하고, 이 때문에 금리가 경직된 시점은 2010년부터다. 91일(3개월)짜리로 은행이 발행하는 시디는 은행 창구에 만기 때 제시하면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사실상 단기예금이다. 그런데 2010년 2월부터 금융당국이 은행의 예대율(총예금 대비 총대출금 비율) 규정을 바꿔 예금으로 인정되는 항목에서 시디를 빼버렸다. 그 뒤 시디시장은 급격하게 위축됐다. 9개 시중은행들의 전체 수신자금 가운데 시디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비중은 한때 20%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2%에도 못미친다. 지난 2008년 224조원에 이르던 시디 거래량은 올해 상반기 13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은행권에선 시디시장의 이런 급격한 위축이 오히려 조작 가능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뜸하게 발행하면서 물량이나 금리를 조정하면 금방 눈에 띄이게 되어 있는데 누가 나서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냥 비교가 될만한 다른 단기금리 추이에 맞춰서 발행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디처럼 91일짜리로 발행하는 기업어음(CP)이나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의 금리 추이를 비교해보면, 0.5%포인트 이상 차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기준금리에 연동하며 시피, 시디, 통안증권의 차례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며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특히 시디 발행이 급감한 가운데 기준금리가 3.25%로 장기간 동결됐던 구간에선 시디와 통안증권의 최대 차이가 0.28%포인트(2011년 9월)에 그쳤다.
시디금리를 높여 은행이 대출자들에게 폭리를 챙긴 흔적도 아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은의 자금동향표에서 2004년 이후 시디금리와 시중은행의 예대마진 추이를 보면, 시디금리가 올라가면 예대마진은 줄어들고 내려가면 거꾸로 올라가는 반비례 관계다. 이런 경향은 시디금리와 가계대출금리(신규취금액 기준)를 비교해봐도 마찬가지이다. 시디금리가 연평균 2.63%에 불과했던 지난 2009년에는 은행의 평균 가계대출 금리(5.73%)가 3.1%포인트나 높았는데 연 3.44%이던 2011년에는(대출금리 5.47%)에는 2.03%포인트로 폭이 줄어들었다. 시디금리가 높을 수록 오히려 수익성이 낮다는 반증이다. 가계대출 금리와 시디금리의 차이는 올들어서도 1월2.25%포인트에서 5월에는 1.97%포인트로 달마다 차이가 감소하는 추세다.
사정이 그렇더라도 주먹구구식 시디금리 결정 구조는 언제든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와 달리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는 뒤전인 채 업계 감싸기에만 급급한 태도를 보여 비판을 사고 있다. 시디금리 결정 방식에 대한 금융당국의 기본적인 시각은 ‘시장 여건과 특성에 따른 불가피한 관례’라는 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 한두 곳이 (시디금리 결정 과정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정도를 두고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라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업계를 변호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정부 안에서도 ‘두개의 시선’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시디금리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성이 금융기관의 재무적 건전성에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었다면 감독당국이 당장 규제에 나섰을 것”이라며 “금감원이 소비자의 시각에서 감독하고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금융소비자 보호’과 ‘금융기관 건전성’ 사이에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규제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금융감독기구가 건전성 규제와 소비자 보호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때 상대적으로 소비자 보호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금융선진국들이 건전성을 감독하는 기관과 소비자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분리해 소비자보호를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이재명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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