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신한은행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할 당시, 청와대와 국회 등을 접촉할 계획을 세운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 민간은행이 자기 회사의 비리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이를 정치권에 알리려 한 배경을 두고 의혹이 일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설범식)의 심리로 17일 오후 열린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의 재판에서 신 전 사장의 변호인은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변아무개 전 비서실장의 대용량저장장치(USB)에 담겨 있는 문서들을 증거로 제출해 공개했다.
문서들의 내용을 종합하면, 신한은행은 신 전 사장을 고소하는 날짜인 2010년 9월2일을 디데이(D-DAY), ‘거사일’로 상정하고 이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 고소 2일차의 시나리오에는 ‘주요 인사 통지’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통지 대상으로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과 국회 정무위원인 허태열·이사철·우제창 의원의 이름이 올라 있다. 이름 아래 쪽에는 이들에게 전달할 내용인 ‘친인척 명의로 거액을 부당대출, 부실화 950억원 정도’, ‘후임 사장은 은행장이 겸임할 예정’ 등이 적혀 있었다.
이 시나리오에는 고소 이후 신 전 사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와 사퇴의사를 밝힐 경우를 상정해 여러 가지 대응절차를 마련해뒀다. 여론이 악화할 경우에는 ‘신 사장 경제적 보상 강화, 고문 선임 등 예우’등을 계획한 반면, 우호적일 경우 ‘신 사장의 추태 언론에 흘리기, 추종자 인사발령 고려’ 등도 계획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또한 신 사장에 대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이 전 행장의 ‘면담 시나리오’도 공개됐는데, 고소의 명분이 된 신 전 사장의 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신 전 사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중에는 ‘신 사장의 혐의에 대한 수사 착수에 검찰총장의 결재가 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를 두고 변 전 실장은 “은행의 다른 부장이 대검 범정기획팀에서 들은 내용을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신 전 사장의 변호인은 신 전 사장을 고소한 뒤 열린 이사회 개최일 직전인 2010년 9월14일 신한은행 비서실이 이 아무개 전 비서실장의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 등 휴대전화 화면을 몰래 촬영한 사진도 공개했다. 이 사진은 변 전 실장의 유에스비 안에 저장돼 있던 것을 공개한 것이다. 이날 법정에서 신 전 사장의 변호인이 변 전 실장에게 사진 촬영 경위를 묻자 “비서실 직원들이 촬영해 보고를 했는데,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신 전 사장 쪽 인물로 분류된 이 전 실장은 당시 중국법인에서 근무하던 중 이 전 행장과의 면담을 위해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법정에서는 신 전 사장에 대한 고소 경위를 증인에게 묻는 것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공방을 벌여 한때 휴정이 되기도 했다. 검찰은 신 전 사장의 변호인에게 “검찰이 수사한 결과 횡령 혐의가 있어 기소를 한 것인데, 고소 경위를 법정에서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고, 신 전 사장의 변호인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내지 못한 부분을 밝히기 위해서는 고소 경위에 대한 신문이 필요하다”고 맞받아쳤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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