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의 폭행·폭언 경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삼환기업주식회사의 서울 종로구 운니동 본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삼환 ‘반인권 황제경영’ 비자금 의혹 이어 폭행 증언 봇물
노조 보호막 없는 임원·간부
30대 회장 아들에 얼굴 맞고, 최 회장에 맞아 고막 찢기고
병원 장기치료·정신적 충격…“회장실서 전화만 와도 깜짝”
머슴 취급에 승진 기피
총수 아들 앞서도 모욕·폭언에 임원 급여를 차장급으로 삭감
노조쪽 개선요구도 ‘모르쇠’…잦은 이직에 경영위기 자초
삼환기업의 ㄱ임원은 지난해 초 자신보다 열살 이상 어린 회장 아들에게 당한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최용권(62·사진) 회장의 장남인 최제욱(35) 상무는 보고가 늦었다는 이유로 그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당시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보름 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한다. 삼환의 관계자는 “최 상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 임원을 형이라고 부르던 사이였으니 얼마나 참담했겠느냐”고 말했다. 최 상무의 폭행·폭언은 그 뒤에도 계속됐고, 해당 임원은 결국 “가족 생계가 걱정이지만 이러다간 내가 먼저 죽겠다”며 회사를 떠났다.
법정관리 중인 삼환그룹의 대주주인 최용권 회장 일가가 수백억원대의 비자금 조성과 차명계좌 관리 의혹에 이어 수십년 동안 임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행·폭언을 서슴지 않는 반인권적 경영을 해왔다는 증언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총수 일가를 10년 이상 보좌한 ㄴ부장은 최 회장에게 맞고 고막이 찢어져 청각장애로 고생하다 결국 회사를 떠났다. ㄷ임원은 2006년 최 회장에게 서류철로 뒷머리를 얻어맞고 목을 다쳐 2개월 이상 병원 치료를 받았고, 역시 고통을 견디다 못해 얼마 뒤 사직했다.
회사의 한 임원은 “건설업의 특성상 창업주 때부터 구타와 욕설이 있었지만, 2세인 최 회장은 스트레스를 풀듯 마구 폭력을 휘두른다”며 “실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 일가의 폭행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원에게 주로 집중되는데, 역대 임원들 중에서 총수 일가에게 폭행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총수 일가의 폭행·폭언은 나이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직원은 “지난해에는 환갑을 넘긴 고참 임원이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최 회장에게 맞아 갈비뼈를 다쳤다”며 “그 임원은 올 상반기에도 다시 같은 부위를 맞아 크게 고생했다”고 귀띔했다. 또다른 임원은 “폭행당한 임원 중 상당수가 병원 치료 기록 같은 명백한 물증을 갖고 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법에 호소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물림되는 총수 일가의 반인권 경영은 임직원을 머슴 취급하는 재벌의 후진적 기업문화에 뿌리를 둔다. 한 고위임원은 “최 회장이 아들 형제를 불러놓고 보는 자리에서 임원들을 때리는 것을 보면 마치 종들은 이렇게 다스려야 한다고 교육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환에서 20여년을 근무한 또다른 임원은 “회장에 이어 30대 중반인 큰아들에게까지 폭행과 폭언을 당하다 보니 이제는 회장실에서 찾는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놀란다”며 몸을 떨었다.
최 회장의 장남은 미국 예일대를 나왔는데, 처음 입사했을 때는 예의바른 청년이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임원은 “삼환 임원들은 폭행뿐만 아니라 월급도 임원 승진과 동시에 차·과장급 수준으로 깎인다”며 “이 때문에 임원 되기를 서로 꺼리는 기현상이 벌어진다”고 털어놨다.
최 회장의 인권침해는 임직원 부모에게까지 가해졌다고 한다. ㄹ임원은 2년 전 최 회장에게 그의 두 아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부모까지 모욕하는 폭언을 들었다. 삼환 노조도 2007년 10월 “최고경영자가 임원들에게 가하는 폭언·폭행은 직원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며 시정을 요구했지만 지금껏 소용이 없었다. 총수 일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임직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겨레>는 최 회장 일가에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대신 삼환기업 홍보실은 “회장실에서 일어난 일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과장과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총수 일가의 반인권 경영은 삼환이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위기를 맞은 것과 연관이 깊다는 지적이 많다. 한 전직 임원은 “한때 시공 능력 4위로 한국을 대표하던 삼환이 법정관리의 나락에 빠진 것은 수십년간 이어진 총수 일가의 폭행과 생계를 걱정할 정도의 낮은 임원 급여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과거 현대 정주영 회장이 직원들의 정강이를 차고, 정태수 한보 회장이 직원을 머슴이라고 부른 사례가 보여주듯 삼환 총수 일가의 폭력은 재벌의 황제경영과 후진적 지배구조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재확인해 준다”고 말했다. 홍순관 삼환 노조위원장은 “최 회장은 독단·불법 경영과 반인권 경영의 책임을 지고 사재출연과 함께 경영에서 물러나고, 사정당국은 총수 일가의 불법을 성역 없이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30대 회장 아들에 얼굴 맞고, 최 회장에 맞아 고막 찢기고
병원 장기치료·정신적 충격…“회장실서 전화만 와도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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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아들 앞서도 모욕·폭언에 임원 급여를 차장급으로 삭감
노조쪽 개선요구도 ‘모르쇠’…잦은 이직에 경영위기 자초
최용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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