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여성부, 셧다운 적용 게임 확대 검토
교육부 ‘2시간 게임 10분 차단’ 추진
게임 규제할수록 ‘예방 효과’보다
주민번호 도용 등 부작용 커
업체도 성인용 돌려 출시 규제 우롱
교육부 ‘2시간 게임 10분 차단’ 추진
게임 규제할수록 ‘예방 효과’보다
주민번호 도용 등 부작용 커
업체도 성인용 돌려 출시 규제 우롱
강화되는 게임 규제 실효성 논란
“아 맞다. 셧다운. 헐.”
지난 13일 프로게임단 ‘스타테일’ 소속 이승현(15) 선수는 ‘아이언 스쿼드’라는 게임대회 국내 예선전 경기를 하다, 자정 직전 이런 말을 채팅 창에 남겼다. ‘셧다운’은 만 16살 미만 청소년들은 자정 이후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한 ‘강제적 셧다운제’를 뜻하는 말이다. 결국 이 선수는 이 경기에서 패배했다. 다행히 이전의 좋은 성적 덕분에 결선 진출에 지장을 받진 않았다.
정부의 게임 규제가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비롯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쪽에선 불합리한 규제 자체를 없애자고 하고, 다른 쪽에선 규제를 강화해 실효성을 높이자고 주장한다.
■ 시간규제·부모동의·강제종료…수많은 규제 국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게임 이용 규제로는 ‘강제적 셧다운제’와 ‘게임시간 선택제’가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1월20일 ‘강제적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지난 7월1일엔 문화체육관광부가 만 18살 미만 청소년들은 본인 연령대의 온라인게임 사이트에 가입할 때 부모 동의 아래 요일별로 게임 가능 시간을 정하고, 부모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를 시행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여성부는 피시 말고도 스마트폰·태블릿·콘솔 온라인게임에서도 셧다운제 확대 시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오는 11월20일까지 각 게임에 대한 평가를 거쳐 대상을 정할 계획이다. 여기에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예방을 내세워 ‘쿨링오프제’ 도입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지난 2월 입법 시도가 무산된 이 제도는 만 19살 이하 청소년은 2시간 동안 게임을 하면 강제적으로 10분 동안 휴식(접속 차단)을 취하고 2시간만 더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런 다양한 청소년 게임 규제는 “온라인게임 중독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추진돼왔다. 문제는 이런 그럴듯한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그 실효성이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주민번호 도용, 성인게임 증가 등 부작용도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이 공개한 ‘청소년 인터넷게임 건전이용제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자정 이후에 게임을 주로 하는 청소년 비중은 0.5%에서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이후 0.2%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전후로 실제 이용 비중 변화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 보고서는 ‘미래를 여는 청소년학회’ 등이 주관해 초등학생과 중학생 600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조사한 결과다. 문화부의 게임시간 선택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제도를 통해 게임시간을 선택한 이용자는 지난 7~8월 동안 8400여명에 그쳤다. 게임업체들은 “1만명당 1명꼴”이라며 매우 미미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강제적 셧다운제 시행 이후 청소년들이 아이디를 도용해 심야시간에 게임을 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 보고서를 보면, 심야시간에 온라인게임을 한 청소년이 9%이며, 이 중 부모 동의를 받아 부모 아이디를 쓴 경우가 59%, 부모 등 타인의 아이디를 도용한 경우가 41%이다. 부모 등 성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 청소년들은 이미 상당수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9살 이상 청소년 10명 중 2명이 나이에 맞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10명 가운데 3명은 “게임 등급 구분이 유용하지 않다”고 답했고, 이 중 60%가 “부모의 주민번호로 인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피시 온라인게임 중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 비중은 전년 대비 10%포인트 늘어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게임물등급위는 “강제적 셧다운제와 게임시간 선택제가 시행되자, 일부 업체들이 게임을 출시하며 아예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 신청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추정했다.
게임시간을 제한하고 부모 동의를 받아 게임시간을 선택하라고 강제하자, 청소년들은 성인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업체는 더 자극적으로 게임을 만들어 성인용 게임으로 출시하며 규제를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 “청소년 보호”-“실효성 없어” 대립 이런 지적에 대해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여성가족부 김성벽 청소년매체환경과장은 지난달 27일 ‘청소년 게임 이용 평가계획 관련 토론회’에서 “청소년 성장과 관련해서 최근 대두하는 이슈가 게임중독 문제이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정책에 대한 바람을 반영해서 셧다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개인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터넷 게임중독은 그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 “맞벌이나 한부모 가족 등 청소년 지도가 취약한 가정에서 자녀지도가 쉽지 않아, 고도화된 마케팅에 자녀양육권을 침해당하는 부모들을 감안한 규제”라고도 설명했다. 청소년의 심야 교습과 노래방·피시방 출입이 제한되듯, 온라인게임 시간 제한(셧다운제) 역시 청소년 보호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토론회에 참여한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의 한 활동가는 “청소년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이유는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문화가 게임이기 때문”이라며 “돈과 시간이 없는 청소년들이 영화조차 즐기지 못하고 게임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규제만 만들어 시행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업계 쪽에서는 ‘규제를 하려면 일관된 철학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부는 ‘18살 미만은 게임시간을 선택하라’고 하고, 청소년 보호 주무부처인 여성부는 ‘16살 미만은 게임시간을 제한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여기에 교과부는 ‘19살 이하는 오랜 시간 연달아 게임하지 말라’고 주문하겠다고 나서려는 참이다. 규제 방법과 나이가 부처별로 제각각인 것이다.
■ 게임 규제, “시대에 뒤떨어진 조처”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가 정보통신망법의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두고 재판관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린 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인터넷은 개방성을 그 주요한 특징으로 하므로 외국의 보편적 규제와 동떨어진 우리 법상의 규제는 회피될 수 있고, 규제가 의도하는 공익 달성은 단지 허울 좋은 명분에 그치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게임 규제에 정확히 적용될 수 있는 지적이다. 지난 10일 네이버가 출시한 온라인게임 ‘문명5’는 강제적 셧다운제 규제를 받지만, 국외에 서버를 둔 외국 업체인 ‘스팀’이 출시한 ‘문명5’ 한국어판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미국 등 외국에서 청소년 게임중독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콘텐츠마다 유해성 정보 등을 자세히 제공하고 학교와 가정의 지도에 맡긴다. 단순히 금지하고 규제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 등이 병행돼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게임 규제는 학교와 가정의 지도역할과 의무를 각 업체들에 시스템을 갖추라고 명령하며 손쉽게 떠넘기는 방식”이라며 “주민등록번호 기반의 인터넷 체제를 재검토하는 시점에 게임업계는 게임 규제를 통해 더욱 시대에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로, 지난해 10월 만 16살 미만 청소년과 부모 3명은 강제적 셧다운제가 청소년들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부모의 교육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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