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보다 민간투자자 대변 우려
로펌 변호사가 국가정책 참여도
로펌 변호사가 국가정책 참여도
세계적으로 3000개를 웃도는 국제 투자조약이 체결되면서 투자자-국가 소송(ISD)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바탕을 둔 ‘중재 산업’은 법률가들에게 수익원이 됐다.
10일 국제 시민단체 ‘유럽기업감시’(Corporate Europe Observatory)와 ‘다국적기관’(Transnational Institute) 등이 지난해 11월 펴낸 보고서 ‘부정을 통한 이윤 창출’(Profiting from Injustice)은 기업 편향성과 일부 법률가들만이 독식하는 국제중재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보고서는 급증한 소송을 변호인과 중재인을 넘나드는 소수의 변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밝힌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기된 소송은 1996년 38건에서 2011년 450건으로 크게 늘었다. 법률 비용은 소송 1건당 평균 800만달러, 경우에 따라서 3000만달러에 이른다. 이런 소송은 ‘마피아 내부조직’으로 불리는 변호사들 몫이다. 상위 15명의 중재인은 현재까지 알려진 450건의 소송 가운데 55%를, 손해배상금 40억달러를 웃도는 12건 소송 가운데 75%를 독식하고 있다.
법률회사들은 소송을 늘리고 기업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대규모 마케팅 부서를 운영하며 소송거리를 찾는 ‘응급차 추격자’ 노릇을 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 법률회사 루터는 2011년 그리스 재정 위기 시절 기업들에 정부가 채무를 상환하지 않으려 할 경우 국제투자조약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알린 바 있다.
보고서는 “중재인들은 공익보다는 민간투자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경향이 강하며 친기업적 편향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2011년 오스트레일리아가 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남아공은 현행 투자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실시하는 등 일부 국가들이 불합리한 제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의 경우 우리 정부와 론스타의 소송 대리인을 살펴봐도 같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론스타 소송에 맞선 한국 정부 태스크포스(TF)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계 로펌인 아널드앤포터의 진 칼리츠키가 한국 쪽의, 시들리오스틴의 스타니미르 알렉산드로프가 론스타 쪽 대리인을 맡고 있다.
론스타 대리인 알렉산드로프는 국제중재 시장에서 이름난 인물이다. 소송을 주관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누리집을 보면, 그는 10건의 소송에서 중재재판장이나 중재인을 맡았다. 더욱이 시들리오스틴은 2010년부터 2년가량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문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아널드앤포터의 칼리츠키 역시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채굴회사가 감비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중재인을 맡은 바 있다. 즉 론스타와 우리 정부 간 소송에서 대리인으로 참여하는 변호사들이 다른 소송에서는 중재인으로 직접 재판에 참여한 것이다.
국제법률회사 소속 변호사들이 ‘재판관’으로만 변신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국가 정책 결정에도 참여한다. 시들리오스틴의 알렉산드로프는 불가리아 외무부 차관 출신이다. 그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국제투자협약을 추진한 바 있다. 국내 법률전문가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아널드앤포터에서 최근까지 일한 김재훈 변호사 역시 법무부 국제법무과 검사로서 다수의 자유무역협정, 투자자보호협정(BIT) 협상에 참여한 바 있다.
이처럼 한때 정부를 대신하다가 다시 변호사로 변신해 투자자-국가 소송에서 국가를 상대하는 구조에서 그들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투자자-국가 소송은 사법주권 침해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공정책이 소수의 법률 전문가의 손에 맡겨지는 등의 폐해가 있다. 정부는 조속히 이를 개정하기 위해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은 현재 중재인(3인) 선정 절차를 밟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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