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맥주 맛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폭탄주’를 제조하는데나 쓸 수준이라는 혹평부터 미국식 라거 일변도라는 지적까지, 넓은 수요층만큼이나 많은 평가들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고 있다. 여기에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까지 지난해 11월 한국의 맥주 맛에 딴죽을 걸었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한국산 맥주의 맛이 떨어지는 것을 놓고는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과, 그에 따른 오비맥주 및 하이트진로의 독과점 체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2011년 10월 국내 세번째로 맥주 제조 면호를 따낸 김강삼 세븐브로이 대표는 “다양한 맥주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과도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김 대표는 2003년부터 서울역 민자역사에서 하우스 맥주 가게를 운영했다. 맥아(싹 튼 보리)와 홉(뽕나무과 식물의 열매)의 비율에 따라 알싸한 맛이 변화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독일에서 맥주 전문가인 브루마스터와 맥주 제조 기계를 들여와 직원들과 함께 맥주 제조 기법을 배웠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맥주는 직영 점포에서밖에 판매할 수 없었다. 시중에 맥주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주세법이 정하고 있는 주류 제조면허를 따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허를 따기 위한 시설 기준을 맞출 수 없었다. 맥주가 발효되는 전발효조가 185만리터에, 발효된 맥주를 저장하는 후발효조는 600만리터를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밀주’가 횡행하던 시절,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큰 기업에 주류 생산을 전담시켜 국민 보건을 지켰던 법 이념이 수십년째 남아있던 것이다. 면허 취득을 위한 시설 기준이 전발효조 5만리터, 후발효조 10만리터로 완화된 건 2010년 들어서였다.
이에 김 대표는 물좋은 강원도 횡성에 70억원을 들여 공장을 설립하고 2011년부터 맥주 생산을 시작했다. 1933년 오비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전신인 조선맥주가 맥주 제조 면허를 딴지 78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양강체제에 길들여진 한국 맥주 시장은 녹록치 않았다. 먼저 주세법의 세율 체제가 발목을 잡았다. 현행 주세법은 맥주 생산 원가에 72%씩 일률적으로 주류세를 책정하고, 그 주류세에 교육세를 30% 덧붙인다. 예를 들어, 출고가 2100원인 세븐브로이의 캔맥주에는 1020원의 세금이 붙어있다.
김 대표는 “천연 홉과 맥아, 물과 효소 만을 사용하고 있어 원재료값이 일반 맥주보다 더 들어가는데다, 중소기업 특성상 판촉비·공장 경비 등 비중이 높다”며 “오비, 하이트와 같은 세율을 적용받아서는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 엄살로만 받아 넘기기 어렵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월 ‘맥주업체 독과점 해소를 위한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현행 주세율 체계로는 원가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중소업체의 주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세율을 차등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산 맥주에 함유된 맥아 비율이 낮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의 주세법은 맥아 비율이 10%만 넘겨도 맥주로 인정해주고 있다. 쉽게 세금을 걷기 위한 방편이었다.
더구나 각 맥주업체는 성분비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맥아 함량 만으로 맥주 맛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오렌지껍질을 사용해 독특한 향을 내는 호가든, 쌀과 옥수수를 더해 부드러움을 가미한 아사히, 삿뽀로 등 해외 맥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맥아 비율 제한에, 성분비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실제 일본의 주세법은 맥아 비율이 66.7% 이상인 경우에만 맥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이하인 경우는 맥아 비율에 따라서 발포주 1, 2, 3으로 분류해 각각 다른 세율을 책정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맥주가 다양한 가격으로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국회의원들이 “맥주 맛을 살려보겠다”고 팔을 걷었다. 민주통합당 홍종학 의원은 주세법 개정안을 마련해, 공청회 등 여론수렴을 거쳐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개정안 내용을 살펴보면, 전발효조(2.5만리터)·후발효조(5만리터)로 시설기준을 완화했고, 소규모 시설을 갖춘 주류 제조업자의 가격경쟁력을 위해 낮은 세율을 부과할 수 있도록 고쳤다. 또 맥아의 비율도 70%를 넘기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다. 독과점 시장의 제도적 장벽은 거의 해소되는 셈이다. 홍 의원은 “소비자 물가가 결정되는 구조를 보면, 대기업 독과점 사업자의 가격 결정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기호품 시장인 맥주 업체의 독과점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맥주’가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법 개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손톱 밑 가시’도 남아있다. 대표적인 게 생맥주 시장의 진입장벽이다. 소매점에 생맥주를 납품하기 위해서는 20리터 생맥주 용기 수십개와 냉각기, 전용잔 등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찮다.
세븐브로이의 김 대표는 “주점 100여곳에 생맥주를 공급하기로 했는데, 업체 한곳에 400만원 정도를 들여야 하는 구조라 사실상 포기했다. 제대로 만든 맥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좋은 시설에서 생맥주로 즐기는 것인데, 만들어 놓고도 공급을 못해 무엇보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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