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전문가인 한만수 공정위원장 후보자가 국외에서 수년에 걸쳐 수십억원에 이르는 비자금을 운용하며 거액의 탈세를 해온 혐의가 드러나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 후보자는 그동안 공정거래 분야의 비전문성, 김앤장 등 대형 로펌(법무법인)에 23년간 근무한 경력 때문에 경제민주화 관련 핵심과제의 수행 책임을 맡은 공정위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셌는데, 국외 불법 비자금 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을 전망이다. 또 한 후보자의 국외 비자금은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인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정의 확립과도 정면으로 배치돼, 박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후보자가 2011년 7월 2006~2010년에 발생한 종합소득세 1억7천여만원을 뒤늦게 납부한 것은 당시 국세청이 역외 탈세 근절을 위해 처음 시행한 국외자산 자진신고 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1년 당시 개인 신고자는 211명이었는데, 이들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교포 중에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한 사람, 국외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 등 국외 금융계좌의 자금이 적법하다는 것을 소명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후보자처럼 역이민자도 아니고, 외국에서 사업을 하지도 않는 사람은 합법적인 자금 출처를 소명하기가 힘들다. 조세 전문가는 “해외 불법 비자금 보유자 중에서 신고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 후보자가 자진신고한 것은 국세청이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한 후보자의 국외 비자금 혐의와 관련해 “대형 로펌에서 외국 기업들의 변호를 맡으면서 받은 수임료나 자문료 가운데 일부를 국외에서 직접 받은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한 후보자는 그동안 거의 매년 외국 기업의 조세 관련 소송을 변론해 왔다. 이런 경우 해당 비자금은 조성 단계부터 소득세를 탈루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조세 전문가는 비자금 규모와 관련해 “계좌 개설 나라의 이자율과 현지 세금 납부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20억~30억원에 달하고, 만약 한 후보자가 납부한 세금이 현지에서 낸 세금을 공제받은 것이라면 원금이 더 커져서, 50억원 전후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 후보는 이에 앞서 107억7000여만원의 국내 재산을 신고한 바 있다. 비자금 계좌 개설 나라는 우리나라와 조세협약을 맺어 정보교환이 원활한 미국·일본 등보다는, 조세피난처처럼 계좌 추적이 어려운 나라일 가능성이 높다. 계좌 개설 시점은 한 후보자가 김앤장에서 한양대 부교수로 자리를 옮긴 2005년 이전에 무게가 실린다.
한 후보자가 국외 금융계좌를 2011년 신고한 뒤에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관건이다. 가능성은 국외에 그대로 놔뒀을 경우와, 국내로 들여온 경우 두 가지로 압축된다. 금융계좌를 국외에 그대로 유지했다면, 2012년에도 국세청에 관련 금융계좌를 신고했어야 한다. 비자금 계좌를 정리했다면 국내로 돈을 들여왔을 수도 있다. <한겨레>가 한 후보자에게 비자금의 국내 반입 여부에 대해 물었으나 답변을 안 했다.
한 후보자의 국외 비자금 운용과 탈세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정의 확립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돼, 향후 대응에 관심이 모아진다. 박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비자금 조성 등 지하경제 형성 거래, 고액 현금거래 탈루 자영업, 국부유출 역외탈세 등에 대한 조사 강화를 천명했다.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정부의 도덕성이나 인사 검증 부실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이 한 후보자의 국외 비자금을 알고도 지명했다면 도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청와대가 사전에 몰랐다면 부실 검증이 문제가 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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