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한겨레 자료사진
대기업 임원 폭행으로 살펴본 사례별 ‘진상 승객’
최근 포스코에너지 임원 ㅇ씨가 대한항공 탑승 도중 무리한 요구에 이어 승무원까지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승무원들의 노동 환경에 관심이 쏠린다. 승무원들은 수십대의 일의 경쟁을 뚫고 입사해 ‘항공사의 꽃’으로 통하지만, 장시간 승객들을 응대해야하는 감정 노동에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ㅇ씨의 사례처럼 폭행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무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22일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에 따르면 “승객들을 상대하다보면 욕설이나 협박 등에 자주 노출된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승무원들이 1년에 두번 이상 고객 불만 접수가 되면 업무에서 제외된 뒤 서비스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때문에 고객의 부당한 요구에 정당하게 응대할 수가 없고, 오히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승객들이 부당한 요구를 더 많이 한다”고 말했다.
주요 항공사들과 전ㆍ현직 승무원들에 따르면, 승무원들은 승객들로부터 폭행은 물론 욕설, 협박 등에 자주 노출된다. 이들을 유형별로 살펴본다.
■ 의도적인 업무방해 지난해 11월 시카고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 ㅇ씨는 인도 사람들이 주로 먹는 ‘힌두 밀(meal)’을 서비스 받았다. 애초 탑승 전 신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비스가 되자 “뭐가 실리는지 궁금해서 재미로 신청해봤어. 그냥 일반 기내식을 달라”고 했다. 이어 디저트로 나온 멜론에 대해 “혀로 핥았는데 상했고 세균이 있네. 내가 직접 식약청에 분석을 의뢰할 테니 보관용 얼음을 달라”고 요구했다. 잠시 뒤에는 “핥기만 했는데 복통이 있으니 약도 가져다 달라”고까지 했다.
ㅇ씨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커피컵에 대해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면 환경 호르몬이 나와. 커피 서비스하는 잔들 직접 확인해야겠으니 모두 가져오라”고 말했다. 이어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하자 직접 경찰에 전화해 “경찰 올때까지 안내리겠다”고 했고, 결국 경찰이 도착하자 “(보관 중인)멜론은 내꺼니까 내가 가져갈꺼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 부당한 보상 요구 지난해 7월 제주발 김포공항행 항공기를 타려던 주부 ㅇ씨는 부러진 골프채에 대해 보상(270만원)을 요구했다. “내가 제주에 왔을 때 드라이버가 부러져 있었어. 골프장에 갔더니 부러져 있더라고. 다 보상해 내.” 며칠 전 서울에서 제주에 올 당시 타던 비행기에서 골프채가 부러졌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항공사 직원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하자 욕설과 함께 “야 XX야! 내가 누군지 알아? OOO사장이랑 아는 사람이야”라고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동료 승객들에게서 골프를 치던 중 골프채가 망가진 것을 확인하자, “내가 그럼 어거지를 부린다는 거야? 더러운 XX들아, 안받고 만다”며 되려 큰소리를 쳤다.
■ 항공안전 위협 지난해 10월 타이 방콕에서 인천항공으로 향하는 학생 ㄱ씨는 막무가내로 승무원들을 괴롭혔다. 그는 승무원과 다리를 살짝 부딪히자 “내 발목을 부러뜨려 죽일 셈이에요”라고 항의했다. 이어 승무원의 사과에도 “어디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사과를 하시겠죠? 조만간 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방송에서 듣게 될 줄 아세요”라고 말했다. 또 승무원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나 병신 취급 하는 거야? 병신 취급하는 거 아니면 전화번호 가르쳐 줘. 오늘 저녁에 나 만날래?”라고 하는 등 도를 넘는 행위를 했다.
이같은 사례에 대해 항공사들은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법(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하여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을 해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을, 거짓된 사실의 유포ㆍ폭행ㆍ협박 및 위계로써 공항 운영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는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항공운항을 방해할 목적으로 거짓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최근 항공사를 이용하면서 거짓된 주장으로 보상을 바라거나 폭언과 폭행으로 승무원이나 직원들에게 직접 상해를 입히기도 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항공사들의 강력한 대처와 함께 국토해양부 등 유관 부처 역시 적극적으로 블랙 컨슈머들의 행태를 차단할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입는 승무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항공의료센터 내에 ‘정신건강 전문 간호사’ 1명을 채용해 운용 중이며, 건강검진시 설문내용을 토대로 의사가 인터뷰를 실시한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사내에 심리상담사 1명을 채용해 상담소 ‘휴-포트’(休port)를 운영하는 정도다. 한 승무원은 “그동안 항공기에서 자살한 승객을 발견한 승무원이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심리 상담을 받은 동료가 거의 없다. 오히려 고객 불만이 접수될까 두려워 운항이 끝나면 거의 매번 ‘컴플레인 예상건’을 보고하는 환경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부채질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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