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춤추는 통계 ② 일그러진 통계, 부실한 관리
불법 민간인 사찰로 헌정을 유린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어두운 그림자는 국가통계에도 드리워졌다. 그의 지시는 부실한 통계를 낳았고 수십억원의 혈세 낭비를 불러왔다.
MB정부, 비정규직법 개정하려
2만명 대규모 조사 급히 기획
정규직 뺀 표본…비교분석 못해
“설계 부적정” 국가통계 승인불가
전문가들 결과 외면…올해 중단 그 시작은 이명박 정부가 2009년 4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2007년 7월 시행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시행 2주년을 맞는 7월 이전에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지 않으면, 2년이 다 되는 비정규직이 대량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100만 해고 대란설’로 유포됐다. 이 즈음 정부는 “법 재개정 논란 과정에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겠다”면서, 이른바 ‘비정규직 이동경로조사’(고용형태별 근로자패널조사)라는 통계를 기획하게 된다. 즉흥적 필요에 의해서였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오랫동안 이어져야 할 추적 조사 하나가 성급히 만들어진 것이다. 이 조사는 이영호 전 비서관의 ‘작품’이었다.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이 전 비서관의 지시가 있었다. 터무니 없었던 게, 2만명의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하고 분기별로 조사하라는 가이드라인의 제시였다”고 말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도 일치했다.
조사의 설계도 엉성했다. 기존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새롭게 유입되는 비정규직을 파악할 수 없는데다가 정규직과 임금 등 근로조건을 비교할 수 없었다. 또 2만명의 비정규직 표본을 확보하는 것도 무리수였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해 최소 10만명 이상의 취업자를 접촉해야 제대로 된 2만명의 비정규직 표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인사는 “전세계적으로도 이런 식의 무리한 조사가 있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도 표본이 2만명에 이르지만, 조사 대상이 광범위한 탓에 조사기간은 연간 단위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이 조사에 부정적이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또 다른 인사는 “비정규직을 추적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비정규직만을 대상으로 조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잘못된 지시와 무리한 조사의 결과는 세금의 낭비였다. 심상정 의원이 지난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는 고용형태별 근로자패널조사에 2010~2012년 약 62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조사결과도 공개되지 않다가 지난해 9월에서야 처음 공개됐다. 18일 <한겨레>가 통계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국가통계 ‘불승인 내역’을 보면, 이 조사는 지난해 4월 “패널 설계의 부적정, 조사결과의 신뢰성 검증 곤란, 결과 활용 계획 불명확” 등 치명적인 여러 이유로 국가통계 승인조차 받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최초 조사결과 발표를 불과 닷새 앞둔 9월17일에서야 겨우 통계청의 ‘조건부 승인’을 얻어냈다. 이렇게 나온 결과는 신뢰를 받지 못한 채 전문가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 조사가 사실상 올해 중단된 것이다. 노동부는 조사에 정규직을 포함하는 등 표본을 새롭게 구성해 올해 5억원의 예산을 들여 시범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연속성이 중요한 패널조사가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면서, 지난 3년치 패널조사는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 손필훈 고용노동부 과장은 “비정규직만으로 하면 한계가 있다.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일자리 이동이 많은지 적은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고 근로조건 비교도 쉽지 않아서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런 ‘예상된’ 문제를 인정하는데 3년이 걸렸고, 매년 20억원이 넘는 돈이 낭비됐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실의 조라정 비서관은 “전체 그림 없이 그때 그때 필요에 맞춰 서둘러 조사를 하다가 빚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조사의 발단이 된 비정규직법 개정 시도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정부가 퍼뜨린 100만 해고 대란설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인사는 “(고용형태별 근로자패널조사가) 처음부터 청와대가 무리하게 주문해서 시작한 조사였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노동’ 싫어…통계명 수시로 바꾼 MB정부 ‘직종별…’은 3년새 3번 바뀌어
통계는 연속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통계의 이름까지 수시로 바꾸면서 혼란을 주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다. 인력부족 해소를 위한 노동정책 수립에 활용되는 이 조사는 지난 3년 새 통계명만 3번이나 바뀌었다. 1994년 이후 같은 이름을 써오던 ‘노동력 수요동향 조사’는 2008년 3월 ‘인력 수요동향 조사’로 바뀌었다. 이듬해 3월 다시 ‘사업체 고용동향 특별조사’로, 1년 뒤에는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로 조사명칭이 변경됐다. 그사이 조사 주기도 연간에서 반기로 바뀌었다. 심상정 의원실의 김가람 비서관은 “일본은 조사 항목 하나 바꾸는 데도 2~3년씩 걸리는데, 우리는 통계의 이름조차 수시로 바뀐다”고 말했다.
또 1969년 이후 연속성을 유지해오던 ‘매월 노동통계 조사’는 2008년 3월 ‘사업체 임금근로시간 조사’로 이름이 바뀌더니 조사 주기도 월간에서 분기로 늘었다. 그런데 2011년도에 ‘사업체 노동력 조사’로 다시 바뀌었고, 조사 주기는 월간으로 되돌렸다.
‘매월 노동통계 특별조사’도 똑같은 시기에 ‘지역별 임금근로시간 조사’로, 다시 ‘지역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들 통계명이 바뀌는 데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이란 단어의 삭제에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정치적 이슈가 되면 수시로 조사표와 내용, 심지어 이름까지 바꿔 전문가조차 헷갈린다. 이런 조사로는 일관된 연구와 정책수립도 불가능하고, 조사로서 가치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농림부·통계청 ‘한우 사육두수’ 수치 왜 다르지? 1분기 기준 39만 마리 차이
통계청, 경제성 낮은 농업 ‘뒷전’ “국가통계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작성되어야 한다.”(국가통계기본원칙 2항) 행정 작용으로 집계된 숫자를 단순히 모아놓은 행정 지표와 달리, 통계는 현실과 그 이면의 동향을 반영하는 숫자다. 그러나 농촌 통계에 관한 한 통계의 현실 적합성은 크게 떨어진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자들은 표피적 조사방법론과 부족한 표본 숫자를 그 이유로 들었다. 한 연구자는 “우선 어쩔 수 없는 샘플 조사의 한계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오류가 많은 지적도를 활용해서 샘플을 선정하는데다, 샘플 숫자 자체가 모자라 농촌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쌀 예상 생산량이 대표적이었다. 통계청은 매해 10월15일께 표본 농지에서 생산된 쌀 생산량을 바탕으로 그해 전체 쌀의 예상 생산량을 추정해 공표한다. 정미 과정을 거친 11월 말께 실제 재배량이 농림수산식품부에 집계된다. 그런데 2008년과 2009년 통계청이 밝힌 예상 생산량은 실측치에 비해 5% 이상 적게 집계됐다. 2009년 통계청의 예상치는 468만t, 실측치는 492만t이었다. 농림부는 통계청의 예상치에 따라 수급 계획을 세웠는데, 남는 쌀을 활용할 대책이 없었다. 결국 농협은 2010년 초 여분의 쌀 50여만t을 추가 매입해야만 했다. 통계 오류의 대가였다. 축산 통계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의 사육 마릿수(두수) 역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가 시행하고 있는 ‘한우이력관리제’는 소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이력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농림부 한우이력관리제 집계 결과를 보면, 한우·육우·젖소는 전국에서 377만마리(5월1일 기준) 사육되고 있다. 그런데 통계청이 올 1분기 기준으로 밝힌 한우·육우·젖소 사육두수는 338만마리다. 비슷한 시기에 공표한 주무 부처 집계와 국가통계가 10%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연구원 축산실 관계자는 “과거 농림부가 농업 통계를 작성하던 시절에는 현장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 정책적 피드백도 가능했지만, 지금 통계청 조사원들은 그저 숫자를 묻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느 쪽에 더 성실한 답변이 나올지는 뻔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경제 통계 위주로 예산과 인력이 지원되는 통계청의 구조에서 농촌 통계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부의 한 간부는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으니, 농업 통계도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 부족한 샘플도 조사 인력의 불성실한 조사 태도도, 결국은 예산과 인력의 문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농촌 통계의 현주소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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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일으킨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가운데)이 부실 통계 작성과 이에 따른 세금 낭비를 초래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3월20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이 전 비서관이 민간인 사찰 사건에 관한 반박 발표를 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황급히 자리를 떠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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