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관련 누리집에는 수없이 많은 통계들이 실려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맞춤 통계’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진은 대전 월평동 통계센터 앞 전광판에 최근 소비동향 추이를 보여주는 통계 그래프가 떠있는 모습. 대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통계청에 관련 규정 없고
기재부 등 “먼저 달라” 등쌀
EU는 ‘접근권 규약’ 둬 통제
기재부 등 “먼저 달라” 등쌀
EU는 ‘접근권 규약’ 둬 통제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계의 사전 제공은 아주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의 경우 미세한 수치 하나로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수조원의 금액이 순식간에 왔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실무 부서 가운데 하나인 유로스타트(eurostat)는 통계 이용자를 위한 공정한 접근권 규약을 두고 있다. <한겨레>가 지난 6일 유로스타트로부터 메일로 받은 이 규약의 제3항에는 통계의 사전 접근권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유럽연합 통계청으로 불리는 유로스타트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집행위원회의 다른 부서에 통계의 공식 발표 19시간(휴일 제외) 전에 ‘엠바고’(비보도)를 전제로 제공한다. 사전 제공의 유일한 목적은 통계가 공식 발표됐을 때 제기되는 물음들에 충실한 답변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유럽연합 회원국의 국가통계기구에는 2시간 전에,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공인된 등록 통신사는 1시간 전에 통계를 제공받는다. 이마저도 소비자물가지수나 국민총생산(GDP) 수치는 그 민감성 때문에 30분 전으로 제약된다.
이외에는 유럽연합 회원국 정부의 부처든지 아니면 언론이든지 예외 없이 일반인과 똑같은 시각에 통계를 받아봐야 한다. 영국 통계청도 통계의 사전 제공은 규정에 의하며, 사전제공자가 누군지를 공표하도록 돼있다.
이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의 통계 사전 제공은 제멋대로다. 지난 4월에 산업활동동향 발표를 앞두고 ‘촌극’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뒤 기획재정부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4·1 부동산 대책’ ‘추경 예산 편성’ 등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도 강하게 암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흐름을 보여주는 산업활동동향 통계가 나쁘게 나오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판이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통상 경제통계가 작성되면, 기획재정부에서는 2~3일 전에 숫자를 묻고 나름의 해석을 준비하게 마련인데, (산업활동동향 발표를 앞둔) 이번에는 유독 서둘렀다. 통계 발표 2주일 전부터 ‘숫자 어떻게 나오냐’ ‘분석중인 통계라도 공유하자’는 등 등쌀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산업활동동향 통계는 결국 좋지 않게 나왔고, 정부의 압박에 밀린 듯 한국은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준금리를 낮췄다.
이 사례는 상급 부처가 필요에 따라 언제든 곶감 빼먹듯 통계청이 만든 숫자를 미리 알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통계청은 통계의 사전 제공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류이근 노현웅 기자 ryuyigeun@hani.co.kr
다주택자 현황·복지 만족도 등 ‘정책 길잡이 통계’ 필요 주택소유현황 1회 조사뒤 중단
부동산정책 효과 측정 어려워
사내하청 규모·중소기업 애로 등
정책 수립 밑돌 될 수치 조사해야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과 행정지표를 모아놓은 ‘이(e)-나라지표’ 등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통계 관련 누리집에 가면, 수없이 많은 통계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맞춤 통계’는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먼저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몇 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부동산 정책 수립에 필요한 핵심자료인 주택소유 현황에 관한 통계가 없어서다. 애초 ‘주택소유 현황 통계’는 참여정부 때인 2005년 처음 생산돼 공표됐다. 주택소유 현황은 유일한 다주택자 관련 통계로 국가통계로도 승인받고 만들어졌다. 2007년에는 통계 품질진단 결과 높은 평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2005년 이후 이 통계는 땅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신세다. 이 문제를 계속 다뤄온 최원식 민주당 의원실의 손낙구 보좌관은 “이 통계가 없다면 부동산 격차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다주택자 장기보유 특별공제 허용 등 정부 정책이 미치는 효과와 적정성에 대해서도 따져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통계 발표의 지연의 이유로 ‘건축물대장 정비 및 개념 정립’을 들면서도, 2011년 ‘국가통계 선진화를 위한 중기(2011~2015년) 행정자료 활용전략’에서 이듬해 하반기까지 공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공염불에 그쳤다. 통계청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와대에 보고한 ‘2013년도 업무추진 계획’에서 다시 올해 안에 주택소유 현황 통계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와 빈곤층에 초점을 맞춘 통계도 부족하다. 먼저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의 경우, 우리 통계는 그 실태와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내하도급 문제가 처음 시빗거리로 등장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자동차 등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고, 다음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노·노 갈등’이 빚어졌다. 고용노동부는 간헐적으로 근로감독관을 파견해 실태를 파악하긴 했다. 노동부는 그 결과로 2008년과 2010년, 불법 파견근로가 줄어들었다는 수치를 공개했지만 현실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는 숫자인지, 이후 추세는 어떠한지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2010년 7월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은 불법 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자는 통계의 부재가 해법 마련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계를 통해 정확한 실태와 추세 분석이 이뤄져야 정책적 해법이 도출될 수 있는데 아쉬움이 크다”며 “지금 정확한 사내하청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부담과 노동자 차별이라는 양쪽 주장만 대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뢰성 있는 통계가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상황이라는 의미다.
복지 영역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수용자 만족도에 대한 통계적 접근이 전무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주대 최희갑 교수(경제학)는 “복지는 결국 서비스인데 우리나라의 복지 통계를 보면, 복지 수급 대상자의 만족도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어린이집 문제가 논란이 된 배경은, 복지수요 수급자들에게 각 복지시설의 주관적 평가지표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덴마크나 스웨덴의 복지 통계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텐데, 이들 나라에서는 각 복지시설에 대한 수급 대상자와 보호자의 평가지표가 통계화돼 공개된다”며 “특히 복지서비스의 수급자들은 사회적 약자로서 정보 비대칭성을 갖기 때문에, 주관적 만족도 지표는 필수적인 통계”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경제학계에서는 2008년 국가통계에서 승인 취소된, 중소기업중앙회의 중소기업 애로 실태조사, 고용노동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실태조사 지역통계 등을 아쉬운 통계로 꼽았다.
통계 조사의 부재뿐만 아니라, 정책·현장과 연동되는 통계조사 방법론에 대한 조언도 잇따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자는 “통계는 현장에서 수집되고 바로 정책으로 돌아가야 살아 움직일 수 있다”며 “제주특별자치도가 감귤출하연합회와 함께 조사하는 감귤 생산량 조사가 좋은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제주도는 감귤 출하 한참 전부터 시차를 두고 3~4차례 실측조사를 벌인다고 한다. 이 과정에 개화한 꽃망울이 예상보다 많을 경우, 꽃망울을 사전에 따내는 방식으로 출하량을 조절해 가격 변동폭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정 작물이 좁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경우, 이런 방식으로 출하량을 조절하면 극심한 가격 변동을 피할 수 있다”며 “전남 무안에서 90% 정도 생산되는 양파 같은 경우에도 이런 방식을 도입하면, 제2의 양파 파동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런 참여형 통계는 충분한 인력과 예산에서 나온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통계청은 여전히 취약하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통계예산은 미국·캐나다의 절반 수준이고, 전체 공무원 가운데 통계기획 인력은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핀란드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특히 우리나라 통계청 인력은 대부분 조사인력이어서 데이터를 질적으로 풍부하게 분석할 여력이 부족한 편이다. 주요 통계의 분석을 불과 1~2명이 붙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필요한 통계를 확충하려면 충분한 통계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류이근 기자 goloke@hani.co.kr
다주택자 현황·복지 만족도 등 ‘정책 길잡이 통계’ 필요 주택소유현황 1회 조사뒤 중단
부동산정책 효과 측정 어려워
사내하청 규모·중소기업 애로 등
정책 수립 밑돌 될 수치 조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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