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오른쪽)가 24일 오전 국회 기재위 회의장에서 법안 처리 및 상임위 개최 여부를 놓고 민주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은행법·금융지주사법 개정안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통과
재벌 일감몰아주기 규제 관련
각종 예외조항에 실효성 의문
지배구조 개선 논의 지지부진
사실상 9월 정기국회로 미뤄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통과
재벌 일감몰아주기 규제 관련
각종 예외조항에 실효성 의문
지배구조 개선 논의 지지부진
사실상 9월 정기국회로 미뤄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을 처리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의 대국민 약속이 결국 ‘용두사미’로 전락하게 됐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을 ‘과잉입법’이라고 제동을 걸어 이를 자초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24일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관련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심의해, 금산분리 강화 차원에서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낮추는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합의처리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핵심 법안으로 꼽히는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에 실패했다. 소위는 25일 오전 정무위를 열기 이전에 다시 모여 최종 협의를 하기로 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경우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법 3장(경제력 집중 억제)에 관련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놓고 여야 이견을 보이고 있다. 또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정상적 거래와 거래조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경쟁입찰 등 통상적 거래 상대방 선정 과정을 거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수정안이 마련돼 실효성 논란이 일 전망이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는 대주주의 부적격 여부를 따질 적용법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배임·횡령 등)을 제외하는 방안을 놓고 여야가 맞서고 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는 대주주가 금융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보험사 등으로 확대해, 총수 일가가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의결권 제한, 지분매각 명령 등의 제재를 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재벌 총수가 배임·횡령을 저질러도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사실상 실효성 없는 법을 만드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신규 순환출자 규제, 재벌 소유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강화, 독립적 사외이사제도 도입, 소수주주권 강화 등 나머지 경제민주화 입법은 제대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갑을문제 개선을 위해 제출된 대리점공정화법도 역시 논의가 안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4개월 동안 여야가 합의한 경제민주화 핵심 법안은 4월 국회에서 통과된 중소기업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부여, 부당 단가인하 등에 대한 징벌적(3배) 손해배상제 확대 적용과, 6월 국회에서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나 법사위를 통과한 대기업의 부당특약 금지, 금산분리 강화,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5개에 불과하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를 막기 위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정무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6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9월 정기국회로 미뤄진다.
결국 재벌들이 전경련을 앞세워 경제민주화 입법을 최대한 9월 정기국회 이후로 미루거나, 핵심 규제조항을 약화시키는 전략이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게 됐다. 또 여야 대표는 지난 18일 6월 국회에서 대선 공통공약 및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포함한 83개 민생법안을 처리하기로 약속한 것과 관련해 국민에게 ‘공수표’만 날렸다는 지적을 받게 됐다. 특히 박 대통령은 경기침체와 ‘버냉키 쇼크’ 속에서 재벌의 저항에 물러서며,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에 모호한 태도를 취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이나 입법은 의지를 갖고 꾸준히 잘 추진해야 한다. 다만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었다. 이는 새누리당 안에 잠복해 있던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이 더욱 힘을 얻는 결과를 낳았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는 과잉입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게 결정적 요인이 됐고, 이로 인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의 간부는 “법안 처리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대통령 스스로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모호한 태도를 보여 추진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김경락 기자,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