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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내부일감’ 내주고 ‘외부일감’ 따와야…입찰 이젠 경쟁이다

등록 2013-07-23 20:55수정 2013-07-23 21:48

[경제 쏙]‘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안 통과 이후
지난 6월 국회에서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재벌의 ‘세금없는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돼온 일감 몰아주기 관행에 큰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에스케이(SK)그룹 계열의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에스케이씨앤씨(SKC&C)는 요즘 ‘비상’이다. 기존 주요 고객이었던 에스케이텔레콤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씨앤씨와의 내부거래를 10% 정도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맞춰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축소한다는 그룹의 의중이 반영됐다. 다른 계열사들도 거래규모는 작지만 비슷한 움직임이어서, 씨앤씨의 올해 내부거래 감소는 1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역시 에스케이 계열사인 에스케이플래닛은 최근 지주회사인 에스케이㈜의 그룹 이미지 광고 물량을 삼성 계열인 제일기획에 뺏겼다. 또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방송광고 물량은 독립 광고사인 티브이더블유에이(TVWA)로 넘어갔다. 두 광고물량만 연간 수백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영향으로 에스케이㈜와 이노베이션이 경쟁입찰을 실시한 여파다.

플래닛은 대신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하이브리드 광고를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다. 현대차그룹도 정몽구 회장 등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이노션이 계열사 광고를 모두 독식하던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플래닛의 고위임원은 “같은 계열사 광고물량을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받아먹던 시절은 끝났다. 각자 경쟁력을 높여서 새로운 외부고객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근절하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재계의 내부거래 관행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광고·시스템통합 분야뿐만 아니라 물류·건설 등 일감 몰아주기가 집중된 분야는 모두 태풍의 영향권 안에 있다. 총수일가 지분이 많아 직격탄을 맞게 된 주요 그룹 계열사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씨앤씨와 이노션처럼 계열사 내부거래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다. 현대차와 롯데 등은 아예 그룹 차원에서 일감 몰아주기의 원천이 된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줄여 경쟁입찰 체제로 전환하거나 독립적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겠다고 약속했다.

※ 클릭하면 이미지가 크게 보입니다.

SK그룹 광고, 제일기획이 수주
쏘나타 광고는 SK플래닛이 맡아
“경쟁력 높여 외부고객 개발해야”

‘세금없는 대물림’ 법구멍 보완
공정위 “부당한 부이전 차단 기대”
내년초 시행까진 기준 놓고 혼선

전산기밀·신제품 출시 ‘보안성’과
신속한 부품조달 ‘긴급성’은 예외
불법상속 관행 근절될지 주목

합병 등을 통해 아예 회사 전체의 매출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시도된다. 매출이 늘어나면 내부거래 비중이 자연스레 낮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씨앤씨는 지난 5월말 매출액 5000억원 규모인 자회사 에스케이엔카(중고차매매업)를 합병했다. 씨앤씨는 이를 통해 내부거래 비중을 현재의 64%에서 40%대 후반으로 대폭 낮출 계획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그동안 재벌들의 ‘세금 없는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됐다. 총수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그룹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준 뒤, 총수일가 소유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면, 상장을 해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두는 수법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원조격은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주식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로, 현대차그룹의 물류 일감을 독차지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 부자와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의 경우, 글로비스와 씨앤씨의 보유주식 가치상승에 따른 이익이 각각 2조원을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재벌총수들의 세금없는 대물림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자산 7조원짜리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세습하면서 낸 상속세는 176억원에 불과했다. 그 비결은 주식을 직접 헐값에 넘기는 방법이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생전에 공익재단에 주식을 출연하고, 공익재단이 다시 이를 후계자로 지명된 이건희 당시 부회장에게 되파는 방법을 동원했다. 정부가 이를 단속하자, 재벌들은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신종금융상품을 활용했다. 비상장 계열사가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총수 2세들에게 헐값에 발행하고, 이후 계열사가 상장을 해서 주식가치가 급등하면, 2세들은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두었다.

노무현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차단을 위해 2004년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했지만, 정부는 이후에도 9년 동안 법 시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또 2007년에는 일감 몰아주기를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의 한 유형으로 규정했지만, 법상 미비점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6월 국회에서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이같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미비점을 보완한 것이다.

재벌 총수일가(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금지 조항을 기존의 부당지원금지 조항이 있는 공정거래법 5장에 추가했다. 규제 대상을 ‘정상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부당지원), ‘직접 또는 자회사 등을 통해 수행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 제공’(사업기회 유용),‘사업능력, 재무상태, 품질 등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일감 몰아주기) 등 세가지로 명시하고, 이에 대해서는 ‘경쟁제한성’ 입증 없이도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에 속한 계열사가 총수일가(또는 총수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와 거래하면서 이와 같은 행위를 하면 규제대상이 된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제민주화국민본부 회원들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입법 방해’ 중단을 촉구하면서 이 법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경제민주화국민본부 회원들이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입법 방해’ 중단을 촉구하면서 이 법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개정법은 또 계열사간 부당지원의 위법성 요건인 ‘현저히 유리한 조건’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완화하고, 부당지원을 해준 ‘지원주체’ 뿐만아니라 지원을 받은 ‘지원객체’도 함께 제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업간 거래에 총수일가 소유회사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기는 이른바 ‘통행세’에 대한 규제도 신설했다. 공정위의 신영선 경쟁정책국장은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한 부의 이전 등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재벌들은 정상적인 계열사간 부품거래까지 규제를 받게 됐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적용대상 축소와 예외 인정으로 규제의 실효성이 상실됐다고 비판한다. 공정위는 재벌 계열사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행위를 했더라도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 거래목적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 등을 통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까지는 혼선이 예상된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예외인정 조항인 ‘효율성 증대’는 부품거래나 수직계열화 등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또 ‘보안성’은 정보기술 분야의 전산기밀, 신제품 출시 등에, ‘긴급성’은 신속한 부품조달 등에만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상당 부분 명확해진다. 예를 들어 삼성의 경우, 에버랜드가 독식하고 있는 계열사 급식사업은 규제 대상이 될 공산이 높다. 또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엠코가 계열사 공장을 짓는 것은 ‘보안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계열사 사원아파트를 짓는 것은 규제의 대상이 된다. 이노션의 경우에도 현대차 등의 신차 광고는 허용되지만, 단순한 그룹 및 계열사 이미지 광고는 규제 대상이 된다. 또 에스케이씨앤씨의 경우엔, 전사적 자원관리(ERP)시스템 등의 전산서비스는 ‘보안성’이 인정될 수 있지만, 범용성이 큰 일반 전산서비스는 규제 대상이 된다.

시행령에서 정해질 규제대상 기업의 총수일가 지분 기준은 15~30% 선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기준이 30%가 되면 삼성의 에버랜드, 현대차그룹의 이노션, 현대엠코, 현대글로비스, 에스케이그룹의 씨앤씨 등을 포함한 195개 재벌 계열사가 규제대상에 포함되는데, 삼성 총수일가가 지분 17%를 보유한 삼성에스디에스가 빠져 논란이 예상된다.

그동안 재벌 총수들은 자산규모가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는 그룹의 경영권을 세금 없이 대물림하면서, 이를 ‘절세’라고 미화하고, 정부당국의 규제를 비웃었다.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재벌의 ‘불법 상속’관행이 과연 사라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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