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동양그룹 본사 앞에 세워진 회사 깃발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최근 동양그룹은 구조조정 미흡으로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기업어음과 회사채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g9@hani.co.kr
적자 1조1680억 부채비율 1233%
대규모 기업집단 평균치의 12배
연리 8% 회사채 등 발행해 연명
“구조조정 늦으면 STX 꼴” 지적에
현 회장 뒤늦게 자산 매각 움직임
동양 “추석전 수천억 자산 매각 목표”
대규모 기업집단 평균치의 12배
연리 8% 회사채 등 발행해 연명
“구조조정 늦으면 STX 꼴” 지적에
현 회장 뒤늦게 자산 매각 움직임
동양 “추석전 수천억 자산 매각 목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동양그룹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투자부적격 등급인 계열사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계열 금융사를 통해 고금리로 발행해 연명하고 있어,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고 있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12월 고강도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비핵심자산 매각과 자본유치 등을 통해 약 2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시한이 2개월 가까이 지난 21일 현재 구조조정 실적은 자산매각 3009억, 자본유치 500억 등 모두 3509억원으로 목표 대비 이행률이 17.5%에 그쳐, 거의 낙제점 수준이다. 특히 덩치가 큰 동양매직, 한일합섬, 안성 웨스트파인골프장, 동양자산운용 등은 아직 성과가 없다. 사모펀드 업계의 한 고위 인사는 21일 “동양의 매각 대상 자산 중에서 일부는 계약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그룹 총수인 현재현 회장이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어 무산된 것으로 안다”고 말해, 총수의 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제기된다.
알짜배기로 알려진 동양매직의 경우, 지난 6월 매각 우선협상자로 교원그룹을 선정했으나 계약 직전 무산됐다. 동양은 매각 가격으로 2500억원을 희망했으나, 교원은 이보다 300억원 적은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은 7월부터 케이티비(KTB)컨소시엄과 매각협상을 다시 벌이고 있으나 아직 성과는 없다. 한일합섬 매각 건도 2월 갑을합섬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지만, 가격 차이로 협상이 결렬됐다. 동양자산운용도 외국계 자본에 매각을 추진하다가 중단됐다.
사업성이 괜찮은 콘크리트파일사업부 매각 건은 가격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아예 매각계획을 철회하고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동양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사업가치를 1500억원 정도로 평가하는데, 매수 희망자는 절반 수준밖에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일부 자산은 협상시간을 번다는 이유로 계열사가 대신 인수하기도 했다. 동양네트웍스는 지난해 말 동양레저가 보유한 경기도 안성의 웨스트파인 골프장을 793억원에 인수했다. 동양은 “회사가 어렵다고 하니까 매수자들이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가격을 후려치는데 무조건 팔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하지만 부실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의 핵심은 속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동양이 살려면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서둘러 부채를 상환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에스티엑스(STX)그룹은 구조조정을 미루다 좌초한 사례다. 에스티엑스 계열사의 한 재무담당 임원은 “강덕수 회장에게 오래전부터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곧 업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말을 듣지 않다가 기회를 놓쳤다”고 털어놨다.
동양은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의 큰사위인 현재현 회장이 1988년부터 경영을 맡아, 재계에서는 드문 ‘사위경영’을 해왔다. 현 회장은 시멘트 등 제조업 중심의 동양에 금융을 접목시켜, 종합금융그룹으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계 20위 안에 들었던 동양이 불과 10년도 안 돼 부실그룹으로 전락하고, 재계 순위도 20위 가까이 추락한 것에 대해 현 회장의 경영실패론이 제기된다.
동양의 부실은 주력인 시멘트사업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건설시장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와 제품가 하락, 외국계 기업 진출 등 경쟁 심화로 인해 만성적인 실적 악화에 시달린 게 결정타가 됐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간 동양의 누적적자는 무려 1조1680억원에 달한다. 그사이 부채는 2조2000억원에서 4조4270억원으로 2배로 껑충 뛰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1233.2%로, 대규모 기업집단 평균치(108.6%)의 12배에 이른다.
동양은 만기가 돌아오는 (투자부적격 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계열 금융사를 통해 연리 8%의 고금리로 차환발행해 겨우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감독규정 개정으로 10월 말부터는 이마저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동양이 끝내 구조조정에 실패할 경우 투자자들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동양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발행 총액은 2조원 정도로, 대부분이 개인인 투자자들이 4만여명에 이른다.
동양 관계자는 “(그런 우려에)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구조조정에) 더 속도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동양 주변에서는 현재현 회장도 인식을 달리하기 시작해, 자산 매각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동양은 마지막 카드로 미래 핵심사업으로 꼽았던 동양파워의 지분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삼척화력발전소 건립을 추진중인 동양파워는 지분 50%의 가치가 3000억~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동양 관계자는 “동양매직, 웨스트파인골프장, 동양파워 지분의 매각은 늦어도 9월 추석 연휴 이전까지는 가시적 성과를 내놓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동양이 앞으로 남은 한 달 사이에 극적 회생의 계기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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