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공정위원장
인터뷰ㅣ노대래 공정위원장
재벌 총수일가 지분 기준 높이면
부당이익 금지 사실상 규제못해
공정거래법, 불공정 양산법 전락
신규 순환출자 금지하는 게 원칙
경제살리기·경제민주화 다 잡아야
재벌 총수일가 지분 기준 높이면
부당이익 금지 사실상 규제못해
공정거래법, 불공정 양산법 전락
신규 순환출자 금지하는 게 원칙
경제살리기·경제민주화 다 잡아야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쟁점이 되고 있는 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해 “여당의 (완화)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 법 개정 취지가 무력화되고, ‘불공정 양산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노 위원장은 또 정기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금호산업 구조조정 관련 신규 순환출자를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향후 법 개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대래 위원장은 지난 11일 서울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총수 일가에게 부당이익 제공을 금지하는 법 개정 취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법을 무효화하거나 형해화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노 위원장과의 만남은 새누리당의 국회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회동하기 하루 전에 이뤄졌으며, 당정협의에서는 양쪽의 이견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여당 의원들은 지난 12일 당정협의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기준과 내용을 수치로 제시하거나 상세하게 열거하는 등 좀더 구체화할 것을 요구했다. 또 규제 대상 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을 공정위가 제시한 상장사 30%, 비상장사 20%에서 각각 40%, 30%로 완화하라고 요구했다. 노 위원장은 이에 대해 “규제기준 수치를 벗어나거나 법에서 열거하지 않은 행위는 모두 ‘공정거래’가 돼버려, 공정거래법이 자칫 ‘불공정거래 양산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노 위원장은 또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높이면)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주요 재벌 계열사들이 (규제 대상에서) 빠져버려 법 개정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사실상 법을 재개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노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금지 유형인 ‘합리성 없는 상당규모 거래’의 제외기준(연간 거래총액이 거래 상대방 매출액의 10% 미만이고, 50억원 미만인 경우)과,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의 제외기준(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으로서 연간 거래총액이 50억원 미만인 경우)을 모두 완화하라는 여당 요구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노 위원장은 “공정위가 새누리당 정책위원회에 이미 설명했고,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의견도 들었다. 정부가 법 개정 취지를 살려 합리적으로 시행령을 만든 만큼 국회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불편한 속내를 비쳤다. 공정위는 애초 9월 초에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입법예고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당정협의에 제동이 걸리면서, 내년 초 법 시행 준비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노 위원장은 “상반기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이어 하반기에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이뤄져야 경제민주화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정기국회에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사실상 현 정부에서는 처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장은 “(재벌)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은 경제에 해독이 되고, 이를 온존시키는 한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며 “꼭 필요한 경제민주화 법을 빨리 끝내야 경제가 살 수 있고, 입법 논쟁이 길어지면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조속한 처리를 희망했다.
노 위원장은 또 신규 순환출자 금지 예외적용과 관련해 “경영부실을 초래한 대주주의 사재출연 등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호산업의 신규 순환출자 추진으로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금호 구조조정 방안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이다. 노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의 금호산업에 대한 출자전환에 대해서도 “아시아나가 (부실 계열사인) 금호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노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간 상호출자의 예외 인정과 관련해서는 “(예외 인정이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지에 대해) 전문가에게 의뢰한 상태로, 법대로 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노 위원장은 공정위가 금호산업 구조조정에 발목을 잡는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금호를 봐주고, 안 봐주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의 국정과제인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연관된 문제인데 공정위원장이 가만히 있는 게 옳은가”라고 반문했다.
노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경제살리기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묻는 질문에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살리기를 강조하는 것이고, 경제민주화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경제살리기나 경제민주화 어느 한쪽으로만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노 위원장은 평소 일관되게 경제민주화가 경제살리기에 배치된다는 재계 주장을 반박해 온 것과 관련해 “청와대나 정부 회의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공정위원장이 유일하다”고 공정위의 고충을 털어놨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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