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 앞두고
앞뒤 안맞는 ‘수요전망안’ 도마에
전력비중 매년 2.5% 증가 예상
“산업부, 기업들 눈치봐” 비판
앞뒤 안맞는 ‘수요전망안’ 도마에
전력비중 매년 2.5% 증가 예상
“산업부, 기업들 눈치봐” 비판
‘전기 소비 가속화는 막을 수 없다?’
정부가 오는 12월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마련한 에너지 수요 전망 기준안이 도마에 올랐다. 과도하게 늘어난 전력 소비를 줄이겠다면서도 정작 전력 수요는 이전 정부에서 계획한 것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는 그동안 전기화(다른 에너지를 전기로 대체하는 것)를 부추겨온 가격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1차 에너지인 등유·중유 값이 2차 에너지인 전기보다 비싸다. 따라서 왜곡된 가격 체계를 바로잡아 수요 관리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틀겠다는 구상이다. 2035년까지 전기 수요의 35% 이상을 줄이자는 목표도 세웠다.
의아스러운 점은 정부가 마련중인 에너지 수요 전망에서 발견된다. 정부가 잠정적으로 마련한 전망치를 보면, 최종 에너지 가운데 전력 수요 비중은 2011년 19.0%에서 2035년에는 28.1%로 증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연평균 2.5%씩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2008년 수립된 1차 에너지기본계획 때 나온 연평균 증가율 2.2%를 웃도는 수치다. 더군다나 최종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1차 계획 때보다 감소(1.4%→0.8%)한데다 국내총생산(GDP) 성장 둔화가 함께 전망된 터라 의문은 더 크다.
에너지 수요 전망 기준안은 한국개발연구원과 산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에 의해 마련된 것이지만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열쇠를 쥐고 있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민관 합동 워킹그룹에 참여한 시민단체 쪽 위원들은 지난 13일 “에너지 수요 전망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못하고 산업부가 일방적으로 수치를 제시했기 때문에 논란 끝에 최종 합의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력 수요 전망에 관련된 산업부의 독주는 환경부 쪽과 공동 작업을 벌이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논의에서도 드러났다. 장하나 의원(민주당)은 ‘2013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 재검증 추진 현황’ 비공개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산업부가 부풀린 전력 수요 전망을 환경부가 그대로 수용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등에 빨간불이 켜질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30% 감축을 목표로 하는 2020년 기준으로 산업부 쪽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력 수요를 5250만TOE(석유환산톤), 환경부 쪽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4690만TOE를 제시했다. 산업부 쪽 안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예측한 전망보다도 20.4% 높다. 이에 환경부 쪽은 지난 8월13일과 20일 열린 관련 회의에서 “산업부가 예측한 전력 사용량 전망이 과도하다”고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과도한 수요 전망이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 산업부 쪽은 2009~2012년 전력 다소비 업종의 투자 확대로 소비 실적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전기화 추세에 따른 전력 소비 증가가 한동안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 출범 첫해인 2008년만 해도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아무런 신호를 주지 않았다. 대신 발전 단가가 저렴한 원전 비중을 대폭 늘리겠다면서 전력 소비를 외려 부추겼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철강업계는 앞다퉈 설비 증설에 나섰다. 철강을 비롯한 1차금속 업종의 전력 소비는 2008년 3384만㎿h에서 2012년 4568만㎿h로 큰 폭으로 늘었다.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전력 다소비 업종의 이런 행보는 전체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국내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경우 지난해 부산시 전체 가구가 쓴 사용량보다 56%나 많은 전기를 썼지만 전기요금은 고작 5%를 더 내는 데 그쳤다. 최근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안이 예고되자 산업계는 강력한 인상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전력 수요 전망이 이런 산업계의 속사정을 과도하게 고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민관 합동 워킹그룹 수요분과를 이끈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저렴한 전기요금 구조가 이어지며 전력 수요가 많이 늘어난 추세가 수요 전망에도 반영된 것으로 안다. 이런 추세를 한꺼번에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환경부·국무총리실 등과 협의를 거친 뒤 에너지 수요 전망 최종안을 이달 말 혹은 내달 초에 내놓을 예정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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