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부정 고백 사면’ 조처 악용
검찰·국세청도 ‘죄질 나쁘다’ 반응
금감원, 검사하고도 “부정 몰랐다”
동양사태 이어 또다시 ‘감독 실패’
검찰·국세청도 ‘죄질 나쁘다’ 반응
금감원, 검사하고도 “부정 몰랐다”
동양사태 이어 또다시 ‘감독 실패’
새로 확인된 조석래 회장 등 효성 총수 일가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는 회사 대출금을 빼돌려 비자금 조성, 국외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이용한 역외탈세, 허위 분식회계 신고 등이 망라돼 있어, 조사중인 검찰과 국세청에서도 죄질이 매우 나쁘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또 금융감독 당국은 2007년 효성의 회계장부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검사(회계감리)를 하고도 효성의 회계부정과 회계법인의 부실회계감사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아, 동양사태에 이어 또다시 ‘금융감독의 실패’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죄질 나쁜 총수 일가 효성 총수 일가의 역외탈세와 배임·횡령은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1996년 국외법인의 대출을 통한 비자금 조성→㈜효성의 대출금 지급 보증→홍콩에 임원 명의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한 국내 주식 매입까지 일련의 복잡한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또 정부가 2005~2006년 과거 분식회계를 고백하는 기업은 제재하지 않는 사면조처를 취한 것을 악용하는 대담성까지 보여줬다. 국외법인의 대출금이 마치 손실이 난 것처럼 허위신고한 뒤 지급보증을 선 ㈜효성으로 하여금 대출금을 대신 갚도록 해서, 800억원대 투자금과 이익을 감쪽같이 챙기는 ‘완전범죄’를 꾀한 것이다.
효성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1조원 규모의 회계부정과 차명재산, 역외탈세 혐의가 드러나고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뒤에도 “조석래 회장은 비자금 조성을 하지 않았고, 회삿돈을 사적으로 사용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효성 총수 일가의 혐의는 이미 검찰에 기소된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의 혐의와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효성의 주장과 큰 차이를 보인다.
효성 임원은 “현지법인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서 페이퍼컴퍼니에 투입된 대출금을 부실채권으로 오인해 분식회계 자진신고 때 함께 손실처리한 것이지, 총수 일가가 착복할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회계 전문가는 “해외법인의 대출금을 손실처리하고, 2011년 페이퍼컴퍼니의 보유주식을 매각한 지 3년이 지나도록 800억원대의 투자금과 이익을 회사에 귀속시키지 않고 해외에 은닉하고 있던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없다. 총수 일가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거액의 손실을 끼치고, 정부까지 속였다는 점에서 국세청과 검찰에서도 죄질을 매우 안 좋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불과 2년 전인 2011년까지 재계 수장으로 불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대표적인 2세 재벌총수라는 점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재계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 금융감독원의 감독 실패 효성은 2006년 분식회계를 자진신고할 때 회사의 숨겨진 부실을 일부만 공개한 채 나머지는 계속 숨기고, 해외법인의 대출금 200여억원을 허위로 부실처리하는 등 두가지 회계부정을 저질렀다. 금감원은 당시 증권집단소송제 시행을 계기로 과거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고백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제재를 하지 않기로 했으나, 효성은 공교롭게 매년 상장기업 중에서 일부를 뽑아 실시하는 표본 감리 대상에 선정됐다. 금감원 간부는 “(2007년 당시) 효성에 대한 감리 과정에서 회계부정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2007년 대선에서 조 회장의 사돈뻘인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것과 연관짓기도 한다.
효성이 검찰에 고발된 지 한달이 다 되도록 금감원이 감리를 하지 않는 것도 석연치 않다. 한 회계 전문가는 “회계부정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 감리에 착수하는 것이 관행이다. 효성이 1조원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는데도 금감원이 감리를 하지 않는 것은 2007년 당시 부실감리를 덮으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계법인의 부실 회계감사 여부도 도마 위에 올랐다. 효성의 회계감사는 회계부정이 처음 시작될 무렵인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안건이, 분식회계 자진고백이 있었던 2005~2007년은 삼정케이피엠지가 각각 맡았다. 하지만 안건이 부실회계로 문을 닫은 뒤 신아무개 대표, 최아무개 상무 등 효성 담당 회계사들이 모두 삼정으로 옮겼기 때문에 사실상 10년간 같은 사람들이 효성의 회계감사를 맡은 셈이다.
국세청 조사에서 효성은 가공의 설비자산(건물·기계장치 등)을 장부에 올릴 때 증빙서류로 세금계산서 대신 가짜 인보이스(상품의 수량·단가 등을 적은 거래상품명세서)를 사용했다고 밝혔는데, 삼정은 세금계산서를 모두 확인했다고 상반되는 진술을 했다. 부실 회계감사를 한 회계법인과 회계사는 회계부정 규모가 크고, 부정을 알고도 묵인하는 등 중대 잘못이 있을 때는 등록 취소와 직무정지 처분까지 당할 수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김경락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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