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기형 인장클램프 개발 중소업체
한전 납품 시작한 이듬해
보훈단체에 수의계약 넘어가
하청 전락…납품량도 30%로 줄어
“직접생산 규정 위반 수수방관” 분통
‘10억이상 구매’ 36%가 수의계약
짬짜미 의심 ‘유찰수의’도 잦아
낙찰률 98% 넘는 계약도 68% 달해
“담합 개연성 매우 높아” 지적
한전 납품 시작한 이듬해
보훈단체에 수의계약 넘어가
하청 전락…납품량도 30%로 줄어
“직접생산 규정 위반 수수방관” 분통
‘10억이상 구매’ 36%가 수의계약
짬짜미 의심 ‘유찰수의’도 잦아
낙찰률 98% 넘는 계약도 68% 달해
“담합 개연성 매우 높아” 지적
경기도 평택에 공장을 두고 있는 중소업체 ㄱ사의 김상필(가명) 사장이 쐐기형 인장클램프를 개발한 건 1998년의 일이다. 인장클램프는 변전소에서 전신주로 오는 배전선로에 매달린 절연제품(애자)을 받쳐주는 부품이다. 쐐기형은 이런 부품을 설치하는 절차와 비용을 대폭 줄인 아이디어 제품이었다.
신제품 개발로 기대에 부풀어 있던 김 사장은 2000년부터 한국전력공사에 인장클램프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1년부터 한전은 재향군인회에 수의계약으로 인장클램프 납품을 몰아줬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훈·복지단체를 배려하는 차원이었다. 김 사장은 “아무리 그래도 개발업체를 놔두고 수의계약을 맺는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재향군인회의 하청을 받아 한전 납품을 이어갔다. 재향군인회가 직접 부품을 생산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재향군인회에 ‘통행료’를 내는 꼴이다 보니, 당연히 회사가 얻는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2006년께 감사원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재향군인회도 일부 물량을 직접 생산하는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전에 납품하려면 수의계약 업체라고 하더라도 직접 생산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이런 규정을 어겨왔던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ㄱ사가 한전에 납품하는 물량은 100%에서 80%로 줄었다.
이후 재향군인회 등이 ㄱ사 외에 다른 업체에도 일감을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ㄱ사의 물량은 더 쪼그라들었다. 김 사장은 “재향군인회가 직접 생산을 하지 않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업체들을 단도리하기 위해 하청업체를 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해 전부터는 또다른 보훈단체인 고엽제전우회 등에도 물량 일부가 수의계약으로 넘겨지고 말았다.
현재 ㄱ사의 납품 비중은 한전이 구매하는 총 물량의 30%로 줄어든 상태다. 김 사장은 “여전히 보훈단체들이 직접 생산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도 한전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무리 수의계약이라고 하더라도 한전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물량을 사들인다는 게 ㄱ사 쪽의 주장이다. 이 업체에 따르면, ㄱ사가 재향군인회에 개당 4200원에 클램프를 넘기면 재향군인회는 이를 한전에 8900원(개당)에 팔고 있다. 경쟁입찰로 전환하면 한전의 구매단가를 개당 5000원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인장클램프 구매계약은 연간 1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김 사장은 “앞으로는 수출 판로를 뚫는 데 주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ㄱ사의 이런 하소연에 대해 한전 쪽은 “인장클램프 구매에 대해서는 재향군인회(72%)와 고엽제전우회(18%), 신체장애인협회(10%) 등과 해마다 수의계약을 맺고 있다. 계약 당시에 제출받은 서류상으로는 (직접 생산 능력 여부 등에 관해)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특수단체에 대한 배려는 원래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처인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을 배제하는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ㄱ사의 사례는 공공기관 조달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전 구매 계약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기본적으로 경쟁입찰 비중이 지나치게 낮은데다 짬짜미가 의심되는 정황도 두드러진다.
24일 우윤근 의원(민주당)이 한전으로부터 입수한 ‘10억원 이상 물품 계약 현황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이뤄진 864건(4조6991억원)의 물품 계약 가운데 수의계약이 311건(1조5012억원)으로, 전체의 36%에 이른다. 특수단체에 대한 배려 차원도 있지만, 낙찰자가 정해지지 않아 전환되는 ‘유찰수의’도 177건이나 된다. 유찰수의는 짬짜미를 모의하는 업체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몇몇 업체로 대상을 좁히는 제한·지명경쟁(108건)을 제외하면, 일반경쟁 입찰은 절반 수준인 445건(52%)에 그친다.
또 예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낙찰률)이 90%를 넘는 물품 계약이 전체 864건 가운데 771건으로 89.2%를 차지했다. 낙찰률이 98% 이상인 계약도 67.7%에 이른다. 수의계약을 제외한 553건만 놓고 보더라도 낙찰률이 95%를 넘는 게 415건이나 된다. 우윤근 의원은 “전력케이블과 콘크리트 전주, 부하 개폐기 등 일부 물품 구매 계약은 거의 예외없이 낙찰률이 98%를 웃돌고 있어 담합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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