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쏙]‘공공기관 혁신’ 나선 배경 뭘까
이례적 혹독한 질타 쏟아내
다음달까지 혁신 방안 마련키로
박대통령도 시정연설서 강조 전체 부채비율 200% 넘어서
무디스 ‘공기업 부채 위험성’ 지적
방만경영 문제도 국감 단골메뉴 ‘부채는 MB정부 책임’ 선긋기 노려
정부 개혁성 부각 의도도 엿보여
“정권 목적따라 운영하다 부채 쌓여
낙하산 인사·코드맞추기 탓 크다” 공공기관 부채가 나라빚을 키워 재정 건전성과 국가 신용도를 위협할 지경이라는 점도 정부의 부담이다. 공무원 연금 지급 등 가까운 장래에 지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채무를 국가부채에 산입하는 발생주의 회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가부채는 902.1조원에 이른다. 직접 상환 의무를 지는 국가채무 443.1조원에 비해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발생주의에 따라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조는 세계적인 추세다. 더구나 정부는 경기둔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위해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는 등 적극적 재정정책을 펼쳤다. 공기업과 정부 부채를 모두 합쳐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곳갓 지키기’의 중요성이 커짐 셈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우리 재정건전성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우수한 편이지만, 국가부채 한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며 “부채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묵은 과제인 공공기관 문제에 정부가 갑작스레 칼을 들이댄 데는, 다른 속내와 셈범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기획의 냄새가 짙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현 부총리의 발언은 이례적일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온화하거나 혹은 자기 색깔이 불분명하다는 그간 평가와 상반된, 혹독한 질타가 이어졌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송유나 연구위원은 “청와대와의 교감이 없었다면 이처럼 강도높은 쇼맨십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현 부총리 발언 이후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예산낭비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히 해 나가겠다”며 ‘공공기관 개혁’을 강조했다. 우선, 청와대와 정부의 ‘공공기관 때리기’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하려는 일종의 선긋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주요 공기업의 부채는 이명박 정부 재임 기간에 폭증했다. 공기업 가운데 부채규모가 가장 큰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23.8조원의 빚을 떠안았다. 2008~2012년 늘어난 부채의 절반이 넘는다. 한국수자원공사도 4대강 사업 예산 부족분 8조원을 대신 부담했다. 친수구역 개발 사업권으로 이를 회수하려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실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 때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쏟아부은 돈이 43조원에 이르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을 공기업들이 떠안았다. 그 결과 한국석유공사·가스공사 등 주요 에너지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이명박 정부 5년간 168~385% 급증했다. 박근혜 정부 처지에서 보면, 집권 1년차에 부채 문제를 불거지게 만들어 ‘자신이 만든 숙제’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재부의 미묘한 입장 변화도 이런 의구심을 낳는 배경 중 하나다. 기재부는 지난 7월 공공기관 합리화 방안을 발표해, 공공기관장 평가 자체를 없애고 3년에 한번씩 기관 평가에 통합하도록 평가 기준을 완화한 바 있다. “경영 효율 저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만에 강력한 개혁으로 선회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소속된 공공 부문 노동조합은 “정부의 정책 실패에 의한 공기업 부채를 마치 공기업 자체의 잘못인 것으로 책임 전가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리먼브라더스 부도 이전까지만 해도 금융정책 방향은 금융 자유화였는데, 이제는 정책 방향이 바뀌지 않았느냐”며 “(공기업 정책도) 흐름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권 초반 개혁 성향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공기관을 때려 현 정부의 개혁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아주대 최희갑 교수(경제학)는 “공공기관이 공공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권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면서 부채가 쌓인 것이 문제일 뿐”이라며 “복지국가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에서 공공기관이 어떤 공공성을 지켜낼 것인지 먼저 답하지 않는 이상, 공공부문 개혁은 결국 효율성 강화와 민영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기업을 때려서 정권의 개혁성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서도 똑같이 목격했던 현상”이라며 “국민들이 공기업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낙하산 인사와 정권 코드 맞추기 탓이 더 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런 면에서는 전혀 개혁적인 보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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