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업체에 불공정행위 적발하고도
부당이득 밑도는 62억 과징금 그쳐
법제정 취지 못살려 제재 실효 의문
할인행사 비용 전가는 재심사 결정
‘무리한 법적용’ 논란도 자초
대규모유통업법 첫 직권조사 무색
부당이득 밑도는 62억 과징금 그쳐
법제정 취지 못살려 제재 실효 의문
할인행사 비용 전가는 재심사 결정
‘무리한 법적용’ 논란도 자초
대규모유통업법 첫 직권조사 무색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대규모 유통업법의 시행에 맞춰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욕적으로 해온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에 대한 직권조사가 ‘솜방망이 제재’와 ‘무리한 법적용’이라는 지적을 동시에 받으며 빛이 바래게 됐다.
공정위(노대래 위원장)는 롯데백화점,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3개 업체의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행위에 대해 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정부가 지난해 초 대규모 유통업법을 시행한 이후 첫 제재다. (<한겨레> 15일치 16면 참조)
공정위 조사 결과, 롯데백화점은 2012년 1~5월 중에 제일모직 등 60개 입점업체들에 신세계, 현대 등 경쟁 백화점의 매출자료 등 경영정보를 부당하게 요구했다. 홈플러스는 2011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직영 판촉사원 인건비 17억원을 4개 납품업체들에 상품 판매대금 공제 및 무상 상품 납품 등의 방식으로 부당하게 전가했다. 롯데마트는 2012년 4월 판촉 목적으로 여자골프대회를 열면서 행사비용을 48개 납품업체들한테 1000만~2000만원씩 협찬금 명목으로 부당 전가했다.
대규모 유통업법은 정부가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납품업체들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제정한 법으로, 과징금의 최고 한도를 납품금액 또는 연간 임대료의 100%로 대폭 높였다. 하지만 공정위는 법 위반 업체들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로 법 제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롯데백화점이 경쟁사 경영정보를 부당하게 요구한 납품업체들의 관련 매출액은 400억원을 넘는데, 과징금은 45억7300만원에 불과하다. 법정 최고한도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친 셈이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의 경우엔 법 위반 행위로 얻은 부당이득보다도 과징금이 적어 제재 실효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홈플러스의 경우, 납품업체들한테 부당 전가한 판촉사원 인건비는 모두 17억원인데, 공정위의 과징금은 13억원으로 3분의 2 수준이다. 또 롯데마트가 납품업체들에 부당 전가한 골프대회 비용은 6억5000만원인데, 과징금은 3억3000만원으로 절반에 그쳤다. 공정위는 또 법 시행 이후 첫 제재라는 점을 이유로 검찰고발도 하지 않았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이 날 대한상의 조찬간담회에서 “부적절한 과징금 깎아주기를 지양하고 고발을 확대해 솜방망이 처벌 논쟁을 차단하겠다”고 강조한 것을 무색하게 만든다.
또 공정위는 애초 신세계(광주신세계 포함), 이마트, 현대백화점(한무쇼핑 포함)을 바겐세일 행사 및 상품권 증정행사 비용의 50% 이상을 납품업체들한테 부당하게 부담시킨 혐의로 함께 제재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20일 전원회의에서 자정을 넘기는 격론 끝에 ‘재심사’ 결정이 내려졌다. 통상 재심사 결정은 사실관계 확인이나 법 적용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을 경우에 하기 때문에,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논란을 자초하게 됐다.
백화점들은 바겐세일 행사의 경우 납품업체들과 상호 필요성에 의해 시행하는 것인데, 백화점의 강압에 의한 비용 전가로 제재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신세계의 경우 바겐세일과 함께 실시하는 상품권 증정행사의 비용을 백화점이 모두 부담한 것까지 포함하면, 납품업체의 비용부담율이 50% 이하로 낮아진다. 현행 법은 납품업체들에게 판매촉진비용의 50% 이상을 부담시키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공정위 송정원 유통거래과장은 “법 적용과 관련해 추가 검토가 필요했다. 현재로서는 제재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면서 솜방망이 제재라는 비판과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지적을 동시에 받게 됐다. 공정위는 또 처음에는 이번 사건을 작은 사건을 다루는 소위원회(상임위원만)에 배정했다가, 뒤늦게 노대래 위원장까지 참석하는 전원회의에 상정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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