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제공

Special Report Ⅰ ● 2013년 불황 속에 빛난 기업들- ② 오리온
철저한 현지화로 중국에서만 매출 1조원 넘겨
초코파이·예감 등 1천억원 넘는 브랜드만 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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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 기업들이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 현지화다. 현지인의 생각과 문화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사업의 운명을 좌우한다. 제과업체 오리온의 ‘중국 마케팅’은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식자재 선별과 구매부터 현지인의 기호에 맞춘 맛, 중국의 정서와 풍속을 충분히 살린 제품 명명과 거래 방식까지 모든 과정이 치밀하다.
중국에서는 제과회사 오리온의 간판 상품인 ‘초코파이 정(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오리유·파-인’(好麗友·波-仁)이라는 전혀 다른 브랜드로 팔리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유’(好友)에 ‘곱다’는 뜻의 ‘리’(麗)자까지 끼워넣어 친근감을 주면서 ‘오리온’이란 발음에도 최대한 가깝게 했다. 한국적 정서인 ‘정’ 대신 중국인들의 인간관계와 도덕규범에서 상징인 ‘어질 인’(仁)을 제품 콘셉트로 채택한 것도 이채롭다.
하오리유 파이는 최근 몇년째 오리온이 중국 시장에서 써가고 있는 성공 신화의 비결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또 다른 파이류 과자인 ‘파이파이 푸’(波波 福)의 포장에는 ‘복’(福)자가 거꾸로 쓰여 있다. ‘복이 뒤집어졌다’는 중국어 ‘푸다오’(福倒)가 ‘복이 온다’(福到)는 말과 발음이 같은 데 착안한 것. 오리온 홍보팀의 윤현호 차장은 “과자 고래밥은 밀가루 대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감자로 만들고 그들의 취향에 맞게 토마토 맛이나 해조류 맛도 가미했다”며 “현지 정서와 문화를 모르면 불가능했을 아이디어들”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이 4년 연속 20%가 넘는 매출 성장세를 과시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10년 1조5950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2조368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눈부시다. 2007년 1414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1조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매출 규모를 앞질렀다. 연평균 48%의 폭발적인 성장세다. 국내 업체 가운데 ‘중국 매출 1조원 클럽’에 제과업체가 이름을 올린 것은 오리온이 처음이다. 오리온 제품들이 인기를 끌자 한때 수십종의 ‘짝퉁’들도 쏟아져나왔다. 오리엔코(Orienko), 초코루비, 과자 고래밥의 중국 명칭 ‘하오둬위’(好多魚)의 글자 순서만 바꾼 ‘하오위둬’(好魚多) 등이 ‘유사 상표’들이다.
중국이 모든 사업자에게 ‘기회의 시장’이라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리온이 중국 시장에서 탄탄히 자리를 잡은 것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지화 마케팅’을 치밀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오리온 홍보실의 박종국 이사는 “우리는 단 한번도 중국을 저가품 판매 시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맨 처음부터 중국에서 고급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고 세계적인 업체들끼리 경쟁도 치열합니다. 우리는 현지 농장에서 엄선한 식재료를 쓰고, 제품이 품질 기준에 못 미치면 미련 없이 태워버렸어요. 감자 같은 식자재를 구매할 때엔 농민들에게 합당한 가격을 쳐주었고요. 또 납품업체나 유통상들과의 모든 거래는 어음이나 외상이 아닌 현금 결제를 고수했습니다.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점차 신뢰가 쌓였습니다.”
오리온이 중국에 눈을 돌린 것은 지난 1997년. 베이징에 첫 현지법인을 세운 데 이어 상하이(2002년), 베이징(2006년), 광저우(2010년)에 잇따라 공장을 증설했다. 선양에서 준공을 앞두고 있는 제5공장도 올해 안에 생산에 가세할 예정이다. 지난해 중국 매출을 보면 자일리톨껌 1700억원, 초코파이 1350억원, 예감 1400억원, 오!감자 1350억원, 고래밥 1300억원 등 연간 매출 1천억원이 넘는 ‘파워 브랜드’만도 5종이다.
특히 중국 초코파이류 시장에선 오리온의 점유율이 85%로 압도적이다. 올해 중국에서 팔린 초코파이를 개수로 환산하면 7억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고래밥은 비스킷류에서 단일 매출 1위 품목이다. 고래밥은 고대 중국의 탐험가 정화(鄭和)를 모델로 바다에서의 모험을 재미있게 표현한 광고를 방영해 중국인들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리온은 올해 들어서 상반기까지 매출 1조2237억원을 기록해 성장률(9%)이 다소 주춤했다. 지난해 22.7%나 급성장했던 영업이익도 올해엔 2.5~3%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국내 제과 수요 침체와 상반기 중국의 재고 소진의 여파 때문이었다.
증권가에선 “오리온의 이익 성장 정체가 올해로 끝나고 내년 2014년에는 연결 영업이익이 17% 늘어나면서 이익 모멘텀이 본격화할 것”(우리투자증권)이라거나 “2014년 영업이익 성장이 전년 대비 24%로 2013년의 3%를 크게 웃돌 것”(미래에셋증권)이라는 전망이 이어졌다. 오리온은 ‘1천억원 클럽’ 제품들을 현재 5종에서 7~8종으로 늘려 2015년에는 중국 시장에서만 매출 1조8천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대우증권의 백운목 애널리스트는 “오리온의 중국 시장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 시장 진입 효과의 시차, 독특한 맛으로 경쟁사와의 차별화, 자체 유통망 구축 등의 여러 요인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다른 경쟁업체들은 국내에서 제품을 만들어 중국으로 수출하는데, 오리온은 유일하게 중국 현지에서 직접 영업을 한다. 이건 엄청난 차이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오리온은 주목할 만한 경영권의 변화를 발표했다. 지난 11월14일 담철곤 대표이사가 등기임원직을 사임하고 그룹 회장직만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담철곤·강원기 공동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던 제과사업 부문이 강원기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바뀌게 됐다. 오리온 관계자는 “전문경영인들의 의사결정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경영상 크게 바뀌는 점은 없다”고 설명했다. 담 회장은 앞으로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면서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 사업을 적극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은 현재 중국 법인 5곳 외에 러시아와 베트남에도 각각 2개씩 모두 9개의 해외 공장을 운용하고 있다.
조일준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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