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4월23일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검찰’ 무색해진 공정위
‘경제검찰’로 불리며 ‘시장경제의 파수꾼’ 구실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기업의 불공정행위 조사라는 본연의 임무까지 소홀히 한다는 우려가 많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정책의 영향으로 기업조사에 소극적이었던 ‘암흑기’로 되돌아갔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 1일 사건조사를 맡은 심사관(국장)이 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전결로 무혐의(또는 경고) 처분을 하는 사건에 대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시민심사위원회’가 검토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법 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작 안건 상정 권한이 담당 심사관에게만 주어져, ‘눈 가리고 아웅 식’ 행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심사관이 무혐의 처분을 한 뒤 스스로 시민심사위에 검토를 의뢰해, 봐주기 논란을 자초하는 ‘바보짓’을 할 리 없다는 것이다. 시민심사위는 검찰이 2011년 말 도입한 ‘시민위원회’를 모방한 것이다.
공정위 위기의 중심에는 말로는 공정한 시장경제 확립과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 뒤로는 대통령 눈치를 보며 기업조사에 소극적인 ‘이중 행보’를 하는 노대래 위원장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노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 뒤통수치는 직권조사는 2014년에도 늘리지 않겠다”고 말해, 공정위를 충격에 빠뜨렸다.
노 위원장, 말로만 ‘경제민주화’
박 대통령 ‘경제 살리기’ 발언 이후
기업조사 소극적…‘직권조사’ 최소화
“기업 뒤통수 안 치겠다” 발언도
내부선 “공정위 역할 부정” 비판 공정위 업무의 두 축은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기업의 반칙행위에 대한 조사·제재가 꼽힌다. 기업조사는 민원인이 접수한 신고사건과, 공정위 스스로 위법행위를 인지해 실시하는 직권조사로 나뉘는데, 큰 사건은 대부분 직권조사다. 공정위 직원은 “위원장 스스로 공정위 역할을 부정하고, 조사관을 기업 뒤통수나 치는 사람들로 낙인찍었다”며 허탈해했다. 공정위는 “(위원장 발언은) 올해는 (경제민주화) 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있고, 최근 신고사건이 많아 처리가 늦어지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올해 직권조사 감소를 부인할 생각 없다. 내년에도 직권조사는 (역대) 꼴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싫어하는 직권조사를 최소화한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다. 성완종 의원(새누리당)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의 올해 직권조사 실적(10월까지)이 59건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직전 5년간 연평균 실적(217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공정위 안팎에선 노 위원장의 눈치보기는 대통령이 하반기 최우선 과제를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 살리기로 내세우면서 심해졌다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7월 초 언론사 간부와 만나 “경제민주화 중요 법안의 입법이 거의 다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8월 말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나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노 위원장은 당시 공정위 간부들에게 ‘전략적 사고’를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결국 법과 원칙보다 대통령의 뜻에 맞춰 일하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당시 ‘수출이 많은 대기업 관련 (직권)조사는 자제하라’는 상부 지시까지 있었다”고 털어놨다. 공정위의 다른 업무들도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에는 공정위 지방사무소가 삼성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아예 신고도 받지 않으려다가, 언론에 알려지자 뒤늦게 접수한 일이 있었다. 또 8월 말 효성 등의 계열사 신고 누락에 대해 솜방망이 처분(경고)을 하고, 9월 중순 금호산업의 출자전환에 대해 상호출자금지 예외인정을 해준 것도 ‘눈치보기’ 사례로 꼽힌다. 공정위가 매년 발표하던 ‘재벌 지배구조 현황 정보공개’도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이 재벌 반대로 제동이 걸린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잇단 ‘솜방망이 제재’에 우려 목소리
‘계열사 신고누락’ 효성 ‘경고’ 그쳐
삼성 불공정행위 신고 한때 거부도
‘시장경제 파수꾼’ 역할 크게 흔들려
전문가들 “인사부터 독립성 높여야” 공정위는 “올해는 법·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내년에는 집행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입법의 최대 성과로 꼽혀온 재벌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법 적용 제외요건’을 너무 확대해 실효성 훼손 논란을 자초했다. 공정위 간부는 “노 위원장이 취임할 때는 업무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경제관료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는데, 7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실망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중간간부들도 부위원장(차관)과 상임위원(1급) 인사를 앞두고 위원장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바른말을 못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 전문가들은 기업 규제를 하는 공정위는 정책의 일관성이 그 어느 부처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공정위원장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 집행의 일관성을 확보하려면, 공정위 인사부터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정위 상임위원을 국회나 사회 각계의 추천을 받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공정위와 유사한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미 그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박 대통령 ‘경제 살리기’ 발언 이후
기업조사 소극적…‘직권조사’ 최소화
“기업 뒤통수 안 치겠다” 발언도
내부선 “공정위 역할 부정” 비판 공정위 업무의 두 축은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기업의 반칙행위에 대한 조사·제재가 꼽힌다. 기업조사는 민원인이 접수한 신고사건과, 공정위 스스로 위법행위를 인지해 실시하는 직권조사로 나뉘는데, 큰 사건은 대부분 직권조사다. 공정위 직원은 “위원장 스스로 공정위 역할을 부정하고, 조사관을 기업 뒤통수나 치는 사람들로 낙인찍었다”며 허탈해했다. 공정위는 “(위원장 발언은) 올해는 (경제민주화) 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있고, 최근 신고사건이 많아 처리가 늦어지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 위원장은 “올해 직권조사 감소를 부인할 생각 없다. 내년에도 직권조사는 (역대) 꼴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싫어하는 직권조사를 최소화한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다. 성완종 의원(새누리당)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정위의 올해 직권조사 실적(10월까지)이 59건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직전 5년간 연평균 실적(217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공정위 안팎에선 노 위원장의 눈치보기는 대통령이 하반기 최우선 과제를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 살리기로 내세우면서 심해졌다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7월 초 언론사 간부와 만나 “경제민주화 중요 법안의 입법이 거의 다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8월 말 10대 그룹 총수들과 만나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노 위원장은 당시 공정위 간부들에게 ‘전략적 사고’를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결국 법과 원칙보다 대통령의 뜻에 맞춰 일하라는 주문이었던 셈이다. 당시 ‘수출이 많은 대기업 관련 (직권)조사는 자제하라’는 상부 지시까지 있었다”고 털어놨다. 공정위의 다른 업무들도 흔들린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에는 공정위 지방사무소가 삼성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아예 신고도 받지 않으려다가, 언론에 알려지자 뒤늦게 접수한 일이 있었다. 또 8월 말 효성 등의 계열사 신고 누락에 대해 솜방망이 처분(경고)을 하고, 9월 중순 금호산업의 출자전환에 대해 상호출자금지 예외인정을 해준 것도 ‘눈치보기’ 사례로 꼽힌다. 공정위가 매년 발표하던 ‘재벌 지배구조 현황 정보공개’도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이 재벌 반대로 제동이 걸린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잇단 ‘솜방망이 제재’에 우려 목소리
‘계열사 신고누락’ 효성 ‘경고’ 그쳐
삼성 불공정행위 신고 한때 거부도
‘시장경제 파수꾼’ 역할 크게 흔들려
전문가들 “인사부터 독립성 높여야” 공정위는 “올해는 법·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내년에는 집행에 중점을 둘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입법의 최대 성과로 꼽혀온 재벌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법 적용 제외요건’을 너무 확대해 실효성 훼손 논란을 자초했다. 공정위 간부는 “노 위원장이 취임할 때는 업무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경제관료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는데, 7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실망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중간간부들도 부위원장(차관)과 상임위원(1급) 인사를 앞두고 위원장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바른말을 못 한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 전문가들은 기업 규제를 하는 공정위는 정책의 일관성이 그 어느 부처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공정위원장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 집행의 일관성을 확보하려면, 공정위 인사부터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정위 상임위원을 국회나 사회 각계의 추천을 받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공정위와 유사한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미 그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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