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안 영산대 교수
한성안의 경제산책
생물세계처럼 인간사회는 진화한다. 독일 역사학파처럼 슘페터와 베블런 등 진화경제학자들은 역사의 변화 과정을 몇 가지 시대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동태적 접근 방식은 근대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할 때도 적용되었다. 레닌이 기업관계에 따라 자본주의를 경쟁자본주의와 독점자본주의로 구분하고 후자를 질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로 부른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슘페터를 잇는 진화경제학자들은 기술과 제도의 특성에 따라 자본주의를 구분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대략 다섯번의 거대한 변화를 겪어 왔다. 이를 ‘기술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로 명명하는데, 예컨대 산업혁명을 주도한 면직물 산업의 패러다임 이후 증기력과 철도, 전기와 철강, 석유와 자동차, 그리고 최근의 정보통신산업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어떤 경제주체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거부할 수 없다. 속도가 다르고, 그 과정에서 특수한 차이들이 나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비난받거나 궁극적으로 낙오하고 만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다. 왜 그런가? 베블런이 지적한 바와 같이 바로 ‘문화’ 때문이다. 문화는 ‘차이’와 ‘관성’의 특징을 갖는다. 유럽과 미국의 문화가 다르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도 다르다. 나와 아내가 학습한 문화도 다르다. 그래서 지금까지 충돌한다. 또 한 사회에 뿌리내린 전통과 관습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한국 사회의 남존여비 문화는 민주사회에서도 여전히 그 관성력을 발휘한다. 개인의 ‘사유 습성’도 그렇다. 오랜 세월 누적되어 온 개인의 생활 습관은 잘 변하지 않는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는 이를 재밌게 보여준다. 성공한 회장의 몸은 붕어빵 장사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걸맞은’ 방식으로 부와 지위를 누리는 데 매번 실패하고 만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서도 각자는 서로 다른 진화 경로를 걷게 된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연구 방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그 역량을 개선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동일한 조건인데도 그 효과는 매우 차별적이다. 어떤 학생들은 새로운 방식을 빨리 수용한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과거의 사유 습성에 단단히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화의 차이는 A학점과 F학점으로 성적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독재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악랄했던 전두환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거대한 패러다임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대통령이 또 나타났다. 보기에도 지쳐버린 ‘올드보이’들을 기용하는가 하면 “자유민주주의의 부정에 대해 엄두도 못 내게 해야 한다”며 독재적 언어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유 습성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그런 문화는 시대착오적이어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 패러다임에 저항했던 전두환이 영어의 몸이 되고 조롱과 힐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역사를 기억해보면 알 수 있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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