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신규순환출자 규제법 급물살
예외 놓고 여야 막판 줄다리기
통과 땐 재벌 지배구조에 영향
예외 놓고 여야 막판 줄다리기
통과 땐 재벌 지배구조에 영향
정부의 경제활성화 우선 정책과 재벌들의 반대로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던 재벌 순환출자 규제 법안의 연내 국회처리가 급물살을 타게 된 배경에는,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발등의 불’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회통과를 위해서는 신규 순환출자 예외인정을 둘러싼 여야 합의라는 최종관문이 남아있어, 막판 줄다리기가 치열할 전망이다.
■ 여야 순환출자 폐해 공감 계열사간 순환출자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왜곡의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삼성·현대차 등 10대그룹의 평균 총수일가 지분은 지난 4월 기준으로 0.99%에 불과하다. 이처럼 적은 지분만으로 수십개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숨은 비결이 ㄱ회사가 ㄴ회사에 출자하고, ㄴ회사가 ㄷ회사에, ㄷ회사가 다시 ㄱ회사에 출자하는 계열사간 순환출자다. 공정위 조사결과, 재벌의 순환출자 124건 가운데 최근 5년간 새로 형성된 순환출자가 69건으로 56%를 차지할 정도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왜곡이 악화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 등 국정과제에 포함됐던 다른 경제민주화법들의 연내처리가 모두 무산된 상황에서 순환출자 규제 입법에 대한 여야 협상이 급진전을 이룬 것은 신속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웅진·에스티엑스(STX)·동양·대한전선 등은 경영부실과 유동성 위기로 이미 무너졌고, 동부·현대·한진해운 등 부실(징후)그룹들은 강도높은 선제적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순환출자를 이용한 부실계열사 지원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동양은 대표적 사례다. 건설업 침체로 어려움에 처한 ㈜동양이 2011년 유상증자를 하자, 동양파이낸셜대부가 총수일가 등의 실권주를 대신 인수해 순환출자가 형성됐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금호산업도 자본잠식 심화로 상장폐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자사 기업어음(790억원 어치)을 출자전환한 뒤 계열사인 금호터미널에 매각하도록 하는 등 순환출자를 이용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순환출자 규제를 빨리 마무리짓지 않으면, 기업 구조조정의 지연은 물론 국민경제의 불확실성까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남은 쟁점과 영향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 소유·지배구조 악화, 부실계열사 지원 등의 폐해를 들어 신규 순환출자 규제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반면 민주당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 해소의무까지 부과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연내 법안 처리를 위해 양보를 함으로써, 남은 쟁점은 신규 순환출자 예외인정 범위로 좁혀지게 됐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은 전경련의 의견을 쫓아, 기업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채권단의 합의가 있을 경우 모두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공정위조차도 순환출자 규제의 취지에 위배된다며 반대한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구조조정과 관련해 채권단의 합의가 있더라도 총수의 사재출연이나 기존 주주인 계열사의 유상증자 참여 경우만 인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신규 순환출자 규제로 당장 기존 재벌 지배구조가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지배구조 대안 모색과 경영승계 구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지주회사체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조 교수도 “재벌들로서는 앞으로 정권교체 등 상황이 바뀌면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자발적인 지배구조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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