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된 ‘재벌 지배구조’
삼성 등 8개그룹 총수 이사등재 ‘0’
경영권한은 누리며 법적책임은 외면
사외이사 비중 늘었지만 거수기 여전
반대해 원안가결 안된건 고작 0.37%
“상법개정안 신속 처리 필요” 지적
공정위, 올 재벌지배구조 늑장발표
‘상법개정안 무산’ 감추려 꼼수 평가
삼성 등 8개그룹 총수 이사등재 ‘0’
경영권한은 누리며 법적책임은 외면
사외이사 비중 늘었지만 거수기 여전
반대해 원안가결 안된건 고작 0.37%
“상법개정안 신속 처리 필요” 지적
공정위, 올 재벌지배구조 늑장발표
‘상법개정안 무산’ 감추려 꼼수 평가
총수들이 수십개 계열사를 지배하면서도 이사 등기를 단 한곳도 하지 않아 권한만 행사하고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재벌이 8곳에 달하고,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 가운데 99%가 그대로 통과되는 등 재벌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이 담긴 ‘재벌 지배구조 현황’ 자료를 연말이 다 돼서야 마지못해 발표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처리가 재벌들의 반대로 흐지부지된 현실을 감추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 총수의 이사등재 회피 공정위는 26일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49개의 올해 4월 기준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총수가 있는 42개 재벌의 경우 총수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계열사 비율은 11%로, 지난해의 11.1%에서 소폭 하락했다. 또 총수 일가가 최소 1명 이상 이사로 등재된 계열사 비율도 27.2%에서 26.2%로 하락했다. 총수가 계열사 이사로 전혀 등재되지 않은 재벌도 삼성·현대중공업·신세계·엘에스·대림·태광·이랜드 등 8개로 지난해와 변동이 없어, 총수가 절대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후진적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반면 롯데의 신격호 총회장, 현대의 현정은 회장, 영풍의 장형진 회장은 각각 10~12개 계열사의 이사로 등재돼 대조를 보였다. 공정위는 “총수의 이사등재 비율이 낮아 권한 행사에 따른 책임추궁이 어려운 지배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 전체 재벌 상장사 238곳의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은 48.7%로, 지난해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도 91.1%로, 지난해보다 역시 0.5%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이사회 안건 6720건 중에서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가결되지 않은 안건(부결·보류·조건부 가결·수정의결 포함)은 불과 25건(0.37%)이었다. 이는 지난해의 원안대로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한 안건 비율 0.63%의 절반 수준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없어 이사회가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삼성, 현대차, 에스케이 등 상위 재벌은 이사회 안건 중에서 원안대로 통과하지 못한 안건이 단 한건도 없었다.
상장사들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와 기업들의 자율사항인 보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는 모두 387개로, 지난해의 345개에 비해 12%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 4개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1114건 가운데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불과 3건으로 0.27%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0.56%의 절반 수준으로, 이사회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감시·견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공정위의 늑장 발표 공정위는 재벌 지배구조 현황 분석을 매년 정례적으로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9월에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올해는 최근까지 자료 발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재벌 총수를 감시·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 감사위원을 단 한명이라도 선임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처리가 재벌들의 반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동조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공정위가 청와대 눈치를 보며 발표를 늦추다가 언론의 지적이 있자 연말이 다 돼서 뒤늦게 늑장발표했다는 지적이 많다.(<한겨레> 12월6일치 14면 참조)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총수 일가의 이사등재 비율이 더욱 낮아지고, 8개 재벌그룹 총수는 수십개 계열사 가운데 단 한곳도 이사를 맡지 않고 있는 현실은 모두 상법 개정과 밀접히 관련된 내용들이다. 재벌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총수들이 등기이사를 맡지 않아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현실에서는 감사위원의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제한, 이중대표소송을 통한 이사의 책임추궁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의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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