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 l 빅 배스
지난해 4분기 국내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면서, ‘빅 배스’(big bath)효과도 일부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빅 배스는 목욕을 해서 더러운 것을 크게 한번 털어낸다는 뜻입니다. 기업이 누적 손실이나 향후 잠재적 부실요소까지 반영해 회계장부에서 한꺼번에 털어 버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빅 배스 효과는 흔히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기에 일어나기 쉽습니다.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선임 된 직후 기업 손실이나 비용을 회계장부에 반영하면, 당장은 장부상 기업 실적이 안좋아겠지만, 다음 회계연도에는 당연히 실적이 대폭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실적이 안 좋은 첫 해 성적은 전임 최고경영자의 탓으로 돌릴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신임 경영진이 다음 회계연도 실적 상승으로 두둑한 보너스를 챙길 수도 있겠지요. 통상 연말연시에 최고경영자 교체가 일어나기 쉬워서, 4분기 실적도 빅 배스 효과에 따라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빅 배스 효과는 국가 단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경제 전체의 부실 규모를 밖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도 그런 전망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정식 취임하는 2009년 전인 2008년 연말에 미국 경제의 부실한 측면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빅 배스 효과로 추정됐던 사례는 국민은행의 경우가 있습니다. 국민은행은 주택은행 시절이던 1998년 고 김정태 전 행장 취임 첫해 2913억원 당기손손실을 기록했으나, 이듬해인 1999년에는 45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렸습니다. 2004년 취임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때도 취임 첫 해 당기순이익은 3605억원에 그쳤으나, 이듬해인 2005년 당기순이익이 2조2522억원으로 불어난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빅 배스 효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가 지난해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2013년에 신정부가 들어서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년차라는 점에서 그 영향이 더욱 클 전망이다. 2013년에 공기업 최고경영자 70%를 포함하여 민간기업 최고경영자도 부분적으로 교체 중이며, 이 과정에서 부실의 상당 부분이 손실처리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빅 배스 탓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적 악화는 경기 침체 등 여러 다른 요소와 함께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김재은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어느 기업이 빅 배스 효과가 있다고 확실히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사실 짐작 정도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빅 배스 효과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있습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 실적 전망이 많이 빗나가면서 빅 배스 효과가 사후 정당화 논리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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