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 ‘쏠림 현상’ 심화
두 기업 ‘기침’땐 경제 전체 ‘몸살’
재벌 의존정책 지속 초래
“대기업 위험 관리·내수 키워야” 지적
정부도 ‘특정기업 의존’ 해법 모색
두 기업 ‘기침’땐 경제 전체 ‘몸살’
재벌 의존정책 지속 초래
“대기업 위험 관리·내수 키워야” 지적
정부도 ‘특정기업 의존’ 해법 모색
새해 국내 증권시장은 좀처럼 부진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산타 랠리’(성탄절을 전후한 상승세)는 물 건너갔고, ‘1월 효과’(연초 기대감에 따른 오름세)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코스피는 33.53 하락했고, 새해를 맞은 뒤에도 내림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 엔화 약세 우려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4분기 실적 악화에 따른 충격)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 전체가 몸살에 걸리는 ‘쏠림 현상’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특정 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포스코,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83%(지난해 말 기준)에 이른다. 특히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02조원으로 전체 시가총액의 15.47%에 이르렀다. 2위인 현대자동차(52.1조원)와 비교해도 4배에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특히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전체의 19.46%에 달했다. 그룹 계열사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전체의 35%를 넘어선다.
이런 쏠림 현상은 국내 경제 전반에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불러온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데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기업 ‘포트폴리오’ 역시 일부 종목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모바일 시장과 완성차 시장에 변수가 생길 경우 한국 경제가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는 이미 이런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다. 노키아의 하락세가 표면화된 2007년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0.3%를 기록하며 2006년에 비해 5%포인트 이상 떨어졌고, 실업률 역시 6.7%에서 8.2%로 크게 늘어났다. 노키아는 1998~2006년 핀란드 전체 법인세액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한국 경제는 지난 30여년 동안 국내 챔피언을 육성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게 하는 방식으로 대기업 집중 성장모델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그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한국 경제 전반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지나친 대기업 쏠림 현상은 건전한 경제 생태계 조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 임원은 “주요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제외하고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분야에 자원 배분이 되지 않는 이상, 새로운 혁신 기업이 등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대기업의 실적 호조가 중견·중소기업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는 ‘낙수효과’의 허구성이 입증되며, 국민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도 만만찮아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소득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9%에서 2012년 62%까지 하락한 반면, 기업소득은 같은 기간 17%에서 23%로 늘었다. 가계 소득 부진에 따른 민간소비 부진은 경기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올라 있는 실정이다.
정부도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광화문 케이티(KT) 사옥에서 열린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출범식에서 “경제부처가 양극화를 분석하듯이 경제활동에서도 기업의 집중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부총리는 “경제정책의 변화로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고 선을 그었지만, 대기업 의존도에 대한 정부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기재부는 삼성과 현대자동차 그룹을 제외한 국내총생산(GDP)을 추산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한 바도 있다.
삼성·현대차 쏠림 현상을 완화할 방안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재벌 의존’이 이미 한국 경제의 현실이 된 탓에, 획기적인 정책 수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최희갑 아주대 교수(경제학)는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재벌 특혜 폐지 등)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음에도, 대기업 편향적인 경제정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경제 운용의 폭이 매우 좁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서비스업 육성 전략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등 새로운 경제 활력을 찾는 데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하대 김진방 교수(경제학)도 “우선은 산업구조를 내수 위주로 바꾸거나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한 환율 보조금을 폐지하는 등 수출주도형 경제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오너 리스크’(대기업 그룹 총수에서 비롯되는 위험)가 국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된 만큼, 대기업 정책 역시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이형섭 김경락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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