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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불특정 다수 소비자 피해’ 사건 4년간 16건…배상은 고작 1건

등록 2014-02-05 20:51수정 2014-02-06 08:45

기업 불법 행위에 제구실 못하는 ‘소비자 피해구제 제도’
설연휴 직전인 지난 1월 말 동양그룹 기업어음·회사채 사기발행 사건 피해자 779명이 현재현 회장 등 동양그룹 전현직 경영진과 금융당국 책임자를 상대로 법원에 손배배상소송을 공동 제기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총 326억원으로, 검찰이 사기혐의를 적용한 기업어음과 회사채 발행액 1조3000억원(2013년 2~9월 기준)의 1.8%에 불과하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3개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서도 지난 4일 514명의 피해자가 손배소송을 제기했다. 정보유출 건수가 1억건을 넘는 것에 견주면 0.0005%에 그친다. 현행 소비자 피해구제 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5일 <한겨레>가 2010년 이후 4년 간 담합·불공정행위 등 기업들의 불법행위로 다수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 16개 사건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가 많게는 수백만명을 넘고 피해액도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건이 여럿인데도, 손해배상이 제대로 이뤄진 것은 단 한차례(22개 납골당의 불공정약관 운용 사건)에 불과할 정도로 소비자 피해구제가 유명무실했다. 금융기관의 근저당권 설정비 부당 전가, 16개 생명보험사 이자율 담합과 관련된 2건의 소송은 대부분 소비자가 패소했다.

삼성전자 등의 전자제품 가격담합, 동양그룹 기업어음 사기발행 등 10건의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인데, 비료와 엘피지(LPG) 담합사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소송 참여자가 적게는 10명 미만, 많아야 수백명에 그친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자동차학원 수강료 인상 담합, 삼성전자 등의 휴대전화 가격 부풀리기 등과 관련된 4건의 소송은 준비 단계인데, 대부분 소송 참여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휴대전화 소송을 주도하는 녹색소비자연대의 남유원 간사는 “소송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소비자 1인당 피해액이 적어 소송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건이 아니면 소송 참여자 모집부터 어렵다”고 말했다.

근저당 설정비 부당전가 소송은
8000명 넘게 참여했는데 거의 패소
소송 중 10건은 ‘참여자 모집 애로’
적게는 10명 미만, 많아야 수백명

“소송 오래 걸리고 배상액 적어
누가 적극 참여하겠느냐” 항변
소비자 피해구제 제도 ‘유명무실’

박대통령 집단소송제 도입 공약
소극적 태도로 입법 1년째 ‘낮잠’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도 난색


소비자 공동 소송을 주도하는 소비자단체와 변호사들은 기업의 불법행위로 다수가 피해를 당한 사건에서 실질적 피해구제가 이뤄지려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함께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보사 이자율 담합 사건을 맡은 오영중 변호사는 “소송에서 어렵게 이겨도 1인당 배상액이 10만~20만원에 그치는 반면 소비자 피해감정비만 수억원에서 수천만원이 들어가는데, 누가 적극 참여하겠느냐”고 되묻는다. 생보사 소송의 경우, 서울변호사회가 공익소송으로 시작했는데, 변호사들이 인지대(50만원)를 부담했다. 또 지난 1월 중순 1심 재판에서 소비자 패소 판결이 나온 것도 비용부담 때문에 소비자 피해감정을 제대로 못한 탓이 크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일부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면 다른 소비자들도 동일하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소비자 1인당 배상액이 3배 이상, 많게는 수십배까지 뛰면서 소송 참여 유인력이 커진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공동소송을 준비 중인 금융소비자연맹의 이기욱 보험국장은 “근저당권 설정비 부당 전가 사건의 경우 피해액이 8조원으로 추정되고, 소송 참여자가 8000명을 넘는데, 재판에서 이긴 소비자가 거의 없다. 정부가 소비자 보호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함께 도입해, 위법 행위를 한 기업은 망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21개 항공사의 화물운임 담합사건은 집단소송제의 효력을 잘 보여준다. 사건에 연루된 대한항공은 미국에서 화물업체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하자, 지난달 1억1150만달러(1180억원)을 배상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는 대한항공이 미국과 한국의 공정거래 당국에 낸 3억달러의 벌금과 487억원의 과징금과는 별개다. 반면 국내에서는 4개 엘지그룹 계열사들이 지난달 제기한 4억원대 손배소송이 처음일 정도로, 피해 보상이 전무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실질적인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 피해자가 소액 다수이고, 피해가 큰 사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들이 공정거래법, 전자상거래법 등에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 5개를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정부 여당의 소극적 태도로 관련 입법은 1년째 잠만 자고 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도 오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을 중점 추진과제에 포함시킬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악의적이고 피해가 큰 위법 행위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약속했고, 지난해 우선적으로 하도급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다른 분야까지 이를 확대하는 것에는 난색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개정 하도급법이 시행에 들어간 만큼 최소 1년 이상 결과를 지켜본 뒤 확대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 당국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재발방지 대책으로 ‘징벌적 과징금제’만 내놓고, 대통령 공약 이행에는 소극적이다. 녹색소비자연대의 소비자 공동소송을 대행하는 김재철 변호사는 “정부가 재발방지 대책에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라는 대통령 공약을 제대로 지키라”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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