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이 진행중이거나 형이 확정된 총수 일가의 임원 등재 현황
지난 11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영복귀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룹 계열사 7곳의 이사직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김 회장의 복귀 전망을 두고,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쇄신 조처 없이 경영 일선으로 돌아오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화그룹 쪽은 회장의 복귀 시점과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병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한다. 당장은 복귀 시점을 거론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조울증과 만성폐질환 등에 걸렸다며, 지난해 1월 병보석을 신청해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김 회장의 복귀가 그리 먼 훗날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그동안 그룹 쪽에선 이라크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와 태양광 사업 등이 탄력을 받기 위해선 총수의 조기 복귀가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성해왔다.
김 회장이 계열사 부당 지원과 관련해,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은 2012년 8월이다. 그는 구속중에도 ㈜한화와 한화케미칼, 한화엘앤씨, 한화갤러리아, 한화건설, 한화테크엠, 한화이글스 등 계열사의 이사직을 유지했다. 지난 1월 경제개혁연대는 “형사재판이 진행중인 총수 일가가 이사로서의 업무수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데도 그 직을 유지하는 것은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이라며 사임을 촉구하기도 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됐다고 해서 이런 논란을 비켜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김 회장은 관련법 적용에 따라,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한화의 대표이사로 재선임될 수 없다.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그 기간이 끝난 날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화약류를 다루는 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
한화건설의 경우도 이사직 유지가 어려울 전망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에 따라, 유죄 판결이 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에 몸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현중 한화건설 대표이사와는 공범관계에 있다. 그룹 관계자는 “상당수 계열사의 이사직 유지가 관련법 조항으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거의 전례를 볼 때, 법적 제재에 따른 공백은 길지 않았다. 김 회장은 2007년 9월에도 ㈜한화의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른바 ‘보복 폭행’ 사건으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을 때다. 이후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2008년)에 특별사면 조처를 받자마자 대표이사직에 복귀했다. 당시 사외이사 수를 조정해가면서까지 김 회장의 복귀가 황급히 이루어지자, 시민단체들은 ‘후진적 지배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법적 제재에 따른 경영복귀 여부를 따지기 전에, 불법행위로 형사사건에 연루돼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이들은 총수 일가를 막론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하더라도 유죄가 확정된 것인 만큼 자발적으로 이사회에서 물러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해 ㈜한화에 대한 지배구조 평가에서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D등급을 판정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총수들의 잇따른 범죄가 족벌경영 중심인 (한국) 대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에 대한 투자자의 우려를 높였다”고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금융 계열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빈번하게 감옥을 다녀온 총수가 금융 계열사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좌우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을 확대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안이 지난해 통과됐더라면, 당장 도마 위에 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