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하는) 과징금의 감경 사유별 적용 대상과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판단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2013년 공정위 국정감사) “감경사유와 감경률의 적정성 및 타당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반복적 법 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2012년 10월 국민권익위원회)
그동안 국회,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원 등이 ‘경제검찰’인 공정위에 대해 ‘과징금 깎아주기’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사례 중 일부다. 언론에서도 ‘솜방망이 과징금’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는 16일 담합·불공정거래·불공정하도급 등 공정거래 관련법을 어긴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할 때 감경 특혜 적용기준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으로 ‘과징금 부과기준 고시’를 개정해 오는 8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조처가 공정위의 ‘솜방망이 과징금’논란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개정 고시는 3단계로 된 과징금 결정 과정 중 최종과정인 ‘부과 과징금 결정’과 관련해, 그동안은 법 위반 기업의 현실적인 과징금 부담능력이 부족할 경우 50% 이내에서 깎아줬으나, 앞으로는 자본잠식 등 사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만 50% 이내에서 감경하고,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면 50%를 초과해서 깎아줄 수 있도록 했다. 또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불황과 같은 시장·경제 여건 등은 부담능력을 평가할 때 참작만 하고, 독립적인 과징금 감경사유에서는 제외했다.
2단계인 과징금 가중과 관련해서도 상습 법 위반 기업의 적용기준을 현행 ‘과거 3년간 3회 이상 위반, 벌점 누계 5점 이상’에서 ‘2회 이상 위반, 벌점 누계 3점 이상’으로 확대 강화했다. 또 과징금 감경과 관련해서도 법 위반 행위에 단순 가담한 기업에 대한 감경 상한을 30%에서 20%로 줄이고, 공정위 조사 착수 이후 협력한 기업에 대한 감경 상한도 15%에서 10%로 축소했다. 논란거리였던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모범운용업체에 대한 감경 특혜는 없앴다.
공정위는 “과징금 결정 관련 재량권을 줄이고,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여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불합리하게 과징금을 깎아준다는 의혹이 불식될 것으로 기대된다. 법 위반 기업의 과징금 부담이 늘어나, 제재의 실효성과 법 위반 억지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고시 개정으로 일부 문제점이 개선됐지만, 과징금 관련 논란을 완전 불식시키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개정 고시는 법 위반 기업의 부담능력 부족을 이유로 과징금을 깎아줄 수 있는 여지를 여전히 지나치게 폭넓게 남겨놓았다.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자본잠식이 예견되는 기업도 과징금을 50% 이내에서 감경받을 수 있는 게 대표적이다.
과징금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도 부족하다. 개정 고시는 법 위반 기업의 부담능력 등을 이유로 과징금을 깎아줄 때는 이유를 의결서(법원의 판결문에 해당)에 밝히도록 했다. 그러나 의결서는 통상 공정위 제재결정일로부터 3~6개월이 지나야 외부에 공개된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제재결정과 함께 발표하는 보도자료부터 법 위반 관련 매출액, 1단계 과징금 부과 기초액, 2단계 과징금 가중·감경 조정액과 이유, 3단계 부과 과징금 조정 이유 등을 단계별로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공정위의 법 집행에서 가장 중요한 과징금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올해 보도자료를 낸 과징금 부과 사건은 인천도시철도 2호선 입찰담합,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업체의 불공정하도급거래 행위 등 모두 10건이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58개 기업에 총 14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보도자료에서 과징금 결정과정을 단계별로 밝힌 것은 단 한건도 없다.
전문가들은 주요 사건에 대한 공정위 제재 결과를 사건의 주심을 맡은 공정위 상임위원(1급)이 직접 설명하도록 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