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
“현행 특경가법 시행령
범죄자가 출자한 기업이나
범죄로 손해본 기업은
취업제한 대상서 제외”
“현행 특경가법 시행령
범죄자가 출자한 기업이나
범죄로 손해본 기업은
취업제한 대상서 제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에스케이(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는 최근 대법원 등에서 형이 확정된 직후 자신이 이사로 등재된 모든 계열사의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또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씨제이(CJ)그룹 이재현 회장도 이달에 임기가 끝나는 3개 계열사의 이사직에서 재선임되지 않는 방법으로 사임했다.
반면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부자는 1조원에 육박하는 회계부정과 1천억원을 넘는 탈세 등 중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고 있음에도 이사직에서 물러나기는 커녕 오히려 이사회 장악을 강화하는 정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속수무책이다. 이처럼 배임·횡령 등 위법행위를 저질러 사법처벌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재벌총수가 계열사 이사직을 맡아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13일 ‘현행법상 임원 자격제한 규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작성 강정민 연구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 위법행위를 한 재벌총수들의 계열사 취업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현행 특경가법 14조는 배임·횡령·재산국회도피·수재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 10조는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취업이 제한되는 기업을 ‘공범 및 범죄수익자와 관련된 기업체’로 국한하고, 정작 범죄행위자가 직접 출자한 기업이나 범죄행위로 손해를 입은 기업은 취업제한 대상에서 제외해, 사실상 법 취지를 무력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강정민 연구원은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계열사에 피해를 끼치는 재벌범죄의 특수성을 완전히 도외시한 법규정 때문에 재벌총수의 계열사 등기이사 취임이나 취업에 대해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특경가법은 법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법 적용을 받아 취업 등이 제한되는 유형의 범죄와 관련해 재판결과를 항상 파악하고,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지체 없이 취업제한 여부 등을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벌 총수일가가 연루된 형사사건에서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해당 기업체의 이사자격을 박탈당한 사례는 한번도 없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위법행위를 한 재벌총수의 계열사 취업을 제한하도록 특경가법 시행령을 합리적으로 개정하고, 취업제한 금지 규정을 위반하면 법규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도록 법무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법집행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정민 연구원은 “특경가법이 개정되면 위법행위를 한 재벌총수는 계열사 등기이사을 맡지 못할 뿐만 아니라 취업 자체가 금지돼, 빈발하는 재벌총수들의 위법행위를 줄이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또 영국의 ‘이사 자격제한 법률’과 같이 중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실에 중대한 귀책사유가 있는 이사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회사의 임원으로 선임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거나, 에스케이텔레콤처럼 회사 정관에 아예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의 이사 자격을 자동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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