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2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영상 국무회의에서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왼쪽)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건설사 지급보증 의무화 방침
공정위, 행정예고 무기한 연기
이미 결정한 정책까지 뒤집는 꼴
“약자 위한 규제는 꼭 필요하다”
박대통령이 말한 ‘균형’과도 배치
공정위, 행정예고 무기한 연기
이미 결정한 정책까지 뒤집는 꼴
“약자 위한 규제는 꼭 필요하다”
박대통령이 말한 ‘균형’과도 배치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이후 기업에 대한 규제강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부 정책의 추진이 갑자기 중단되고, 심지어 정부가 이미 결정한 기존 정책까지 뒤집히면서 정책의 일관성 상실과 혼선이 우려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4일 ‘건설하도급 지급보증 면제대상 고시’를 폐지하는 내용의 행정예고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그동안 건설사가 파산 등으로 중소 하청업체들에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지급보증을 받도록 하고, 기업 신용등급이 ‘A°’ 이상인 우량 건설사에 한해 이를 면제해왔다. 하지만 건설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신용등급이 높은 건설업체도 대금을 제때 못 주는 사례가 발생하자, 중소 하청업체 보호를 위해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모든 건설사가 지급보증을 받도록 방침을 바꿨다. 실제 최근 5년간 지급보증을 면제받은 대형 건설사 중에서 고려개발, 삼호, 삼환기업 등 3곳이 부도를 냈다. 하지만 공정위는 발표 예정일 오후 갑자기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에 시간이 걸린다”는 궁색한 이유를 내걸어 연기 방침을 밝혔다.
정부 안에서는 이를 두고 청와대 규제개혁 점검회의 이후 기업 규제강화 관련 정부 정책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모두 경쟁적으로 규제완화 대책을 마련하는 터에 대통령의 규제완화 정책에 역주행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정책은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고 털어놨다. 공정위 관계자도 “신용등급이 높은 건설사에 대한 지급보증 면제 폐지 방침을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라며 정책 수정을 시사했다.
이는 국토건설부가 지난 2월 이미 불공정 하도급거래 개혁 차원에서 건설산업기본법상 고시를 공정위와 동일한 내용으로 개정해 8월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한 것과도 배치돼, 정부의 규제완화 눈치보기로 인해 정책의 일관성이 상실될 위험성마저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의 갑작스런 정책 변경으로 중소 하청업체들의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더욱이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끝장토론’에서 규제 강화-완화 간의 균형을 거론하며 “시장의 독점 폐해를 줄이기 위한 공정거래분야 규제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에도 배치된다. 공정위가 25일 ㈜한양과 삼부토건이 54개 중소 하청업체들에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미분양 아파트를 억지로 강매한 데 대해 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대형 건설사와 거래하는 하청업체들이 불공정행위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앞서 공정위는 최근 백화점이 중소 납품업체들에 판촉비용, 인테리어비, 재고관리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떠넘기는 불공정거래의 원천으로 지목돼온 백화점-납품업체 간 ‘특약매입(반품조건부 외상매입) 거래방식’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기로 한 정책을 백지화한 바도 있다.
한편 정부는 2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청와대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이 제기한 50여개 규제 해소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법 개정 없이 행정지침 등의 조정으로 해소할 수 있는 10여개를 선정해 신속히 처리할 방침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권은중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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