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협회, 인증제 5월 시행
유통점 인증받고 판매사 자격 따야
자율 참여라지만, 사실상 강제
점주들 “유통망 장악하려는 꼼수”
유통점 인증받고 판매사 자격 따야
자율 참여라지만, 사실상 강제
점주들 “유통망 장악하려는 꼼수”
이동통신사들이 통신시장 유통질서 건전화를 명분으로 유통점에 기습적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인증’을 빌미로 대리점과 판매점을 퇴출시킬 수 있는 장치를 갑작스레 마련한 것이다. 유통점 쪽은 이통 3사의 불완전 판매 ‘조장’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이동통신사들이 방송통신위원회를 뒷배삼아 유통망 통제에 나선 것이라고 반발한다.
27일 <한겨레>가 입수한 이통사 및 한국정보통진흥협회 내부의 통신시장 유통질서 건전화 사업 추진 관련 문건을 보면, 이통 3사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이하 협회)를 앞세워 ‘유통점 인증제’ 및 ‘통신판매사 자격검정제’를 5월부터 전격 시행한다. 모든 유통점은 협회에 만들어지는 ‘통신시장유통질서건전화운영위원회’의 인증을 받고, 유통점 직원들은 ‘통신판매사’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통 3사가 5억원을 댔고, 방통위와 이통사들이 모두 운영위원으로 참여한다.
방통위는 ‘업계 자율’, 이통사와 협회는 ‘유통점 자율 참여’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통사가 협회와 맺은 사업협약서 및 실무 부서에 보낸 문건을 보면, 실제로는 강제 시행 쪽에 가깝다. 신규 판매점 거래 등록 시 인증 여부를 필수조건으로 하고, 유통점 평가 때 판매사 보유 및 인증점 여부를 반영하기로 했다. 또한 통신판매사 자격 취득자에 한해 전산망 접속 계정을 준다. 이통 3사는 지난해 9월 맺은 협약서에서 올해 4분기부터 유통점 평가를 반영해 내년 말까지 모든 유통점이 인증을 받게 하기로 했다.
유통점 인증은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부여된다. 인증현판·인증서·인증마크 등이 교부된다. 첫 인증 비용은 45만원이고, 이후 해마다 22만5000원씩 내고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통신판매사 자격증은 11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받고, 자격검정 시험을 통과해야 내준다. 인증을 받은 뒤 불완전판매 행위를 하다 2번 이상 신고를 당하면 인증이 취소된다. 인증이 취소되면 1년 동안 재신청이 금지되므로, 사실상 유통점 문을 닫게 되는 셈이다. 협회 정범석 유통망인증팀장은 “유통점의 불완전판매 행위를 막고, ‘폰팔이’ 등으로 비하되는 유통점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점들도 유통질서 건전화 필요성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통점의 불완전 판매를 사실상 조장하는 이통사들의 ‘영업정책’은 손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반발한다. 이통사들이 그동안의 불완전 판매 책임을 유통점에 떠넘기고, 유통망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통신시장 유통질서 건전화 사업을 기획하고 주관하는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는 통신사업자 단체로, 하성민 에스케이텔레콤 사장이 협회장을 맡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박희정 사무총장은 “이통사들이 유통점에 주는 수수료는 누진제처럼 돼 있다. 예를 들어, 30명을 유치하면 한명당 20만원, 50명은 30만원, 100명은 50만원씩의 수수료를 준다. 또 목표치를 주고, 달성하면 정해진 수수료를 다 주고, 못채우면 상대적으로 큰 불이익을 준다. 100명의 목표를 부여받은 대리점이 기한 하루 전까지 90명을 모았다면, 가족 이름으로 가개통을 해서라도 100명을 채우려고 하지 않겠냐. 이통사들이 이런 식으로 유통점을 몰아부쳐 불완전판매를 조장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통점들은 협회가 방통위를 뒷배 삼아 통신 유통질서 건전화를 명분으로 ‘수익사업’을 한다는 주장도 한다. 박희정 사무총장은 “이동통신 유통점이 5만여곳에 이른다. 인증과 자격검정비로 협회는 내년까지 280억원, 이후에는 해마다 120억원 가량의 수입이 예상된다. 협회가 옛 정보통신부, 방통위 출신 관료들을 낙하산으로 받은 뒤 유통점을 상대로 수익사업을 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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