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난색…임시국회 처리 못할지도
금융회사가 고객정보를 유출할 때 강력한 제재 수단이 될 수 있는 ‘징벌적 손배해상’ 제도가 1일 국회 정무위원회 문턱을 못 넘었다. 하루 전만 해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서 전체회의 통과도 무난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은 것이다. 이 때문에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의 후속 대책으로 마련된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째로 처리되지 못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이미 하도급법에서 일부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피해자가 입은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하도록 가해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전날 법안소위를 통과한 법안 내용은 이렇다. 금융회사가 고의 혹은 중대과실로 고객정보를 유출해서 피해를 입힌 경우에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하도록 했다.
이런 방안은 개인정보 유출 자체를 손해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내야 한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가 유출한 개인정보가 시중에 유통되고 보이스피싱에 활용되는 등으로 입은 구체적인 피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야당 쪽에선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만으로도 배상 책임을 부여하자고 주장해왔다. 제도 설계를 두고 간극이 컸는데도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합의를 이룬 것은, 난색을 표해오던 금융당국이 제도 도입을 받아들이는 대신, 야당도 애초 발의한 법안 내용에서 한발 물러서기로 하면서 가능했다.
하지만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일부 야당 의원들은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이 너무 미흡한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강기정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만 합의됐을 뿐, 정보 유출 자체를 손해로 간주하도록 하는 등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내용은 정부(금융위원회) 반대로 다 빠져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소송이나 배상명령 등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배제도마저 빈껍데기만 도입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여론도 영향을 끼쳤다. 야당 쪽은 최소한 정보 유출에 따른 정신적 피해 등을 입증하기 곤란한 경우는 법원이 손해액을 산정하도록 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금융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여, 관련 법안의 4월 임시국회 처리는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