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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회장-행장 ‘옥상옥 갈등’…금융지주 수술대 오른다

등록 2014-05-22 19:20수정 2014-05-25 10:19

금융위, 지배구조 개선안 서둘러

회장-행장 입김 따라 거수기 노릇
완전자회사 사외이사제 없애기로
회장 산하 리스크관리협 의무화
전문가 “제도 아닌 낙하산이 문제”
정당성 갖춘 최고경영자 선임해야
‘8 대 2.’

지난달 24일 케이비(KB)국민은행 이사회의 표결 결과다. 안건은 주 전산시스템을 유닉스로 교체하는 방안이었다.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은 컨설팅 보고서에 리스크 요인이 누락됐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이 행장의 강력한 반대에도 찬성표를 던진 8명은 박지우 수석부행장과 윤웅원 케이비금융지주 부사장, 그리고 6명의 사외이사들이었다. 자회사들의 전산시스템 교체를 추진해온 케이비금융지주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지주 쪽이 의사를 관철시키는 데는 각종 수단과 방법이 동원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사회가 열리기 전 지주 쪽에선 보고서에서 ‘리스크’ 관련 내용을 들어내라는 지시를 전자우편과 온라인 메신저 등을 통해 은행 실무자들에게 전달했다. 일부 사외이사들은 지난 16일 감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날까지도 정 감사 쪽 문제제기에 일리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감사를 중단하라”며 입장을 바꿨다. 지주 쪽이 은행 이사회 결정을 지주 쪽 방침대로 유도하기 위해, 비선을 통해 보고서 내용을 누락시키고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세운 셈이다.

이번 일이 금융감독원 검사로까지 이어지고 지주-은행 간 날선 공방이 계속되면서, 국민은행은 23일 오전 긴급이사회를 열기로 했다. 이사회에서 갈등을 봉합하는 의견조율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회장(지주) 대 행장(은행)’으로 완전히 양분된 구도에서 제대로 봉합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케이비금융 내부의 집안싸움이 벌어진 배경에는 금융지주가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자회사인 은행을 총괄·조정하기 어려운 ‘옥상옥’ 구조가 있다. 은행이 별도의 이사회를 두고 있기 때문에 지주 회장과 행장이 서로 대립각에 서 있을 때 이를 조율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뜻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하게 명시하는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이르면 내달 초 발표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우선 금융지주가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은행 등)의 사외이사를 없앨 방침이다. 원래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완전자회사 등의 지배구조 특례’(41조의 4) 조항을 통해 완전자회사 및 손자회사가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부분 많게는 5~6명씩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지주회사의 전횡을 견제하려는 금융당국의 의도가 담긴 관행이었지만, 지주와 은행 간에 일관된 전략 수립을 가로막는 암초로 작용하기도 했다.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면, 은행 이사회의 감시 기능(사외이사·감사위원회 등)이 지주 이사회로 통합된다.

금융위는 또 금융지주 회장이 경영관리위원회나 리스크관리협의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 주요 경영전략과 통합 위험관리 등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주의 책임은 강화하되, 권한은 시스템을 통해 투명하게 행사하라는 취지다. 비공식 접촉을 통해 권한을 행사하는 대신 공개된 시스템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과를 반드시 문서로 남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전략을 총괄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지주회사 취지를 살리려면 이사회 구조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옥상옥 구조를 만들어 갈등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씨티금융지주는 지주와 은행을 9월까지 합병하기로 하면서 금융지주 구조를 아예 해체해버리기로 했다.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금융지주 계열사 간 정보공유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면서 금융지주 체제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사라진 데다, 현재의 금융지주 체제가 옥상옥 구조로 전락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금융권 인사는 “지주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자산 비중이 80%가량이었는데도 은행은 은행장이, 회장은 나머지 자회사를 관리하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케이비금융 갈등이 제도 개선으로만 바로잡힐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 임원 출신의 한 금융권 인사는 “지주와 은행 간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는 문제는 제도의 문제보다는 실제 운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며 “국민은행 갈등의 본질은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외부에서 영입된 국민은행의 행장과 케이비금융지주 회장 간의 예고된 충돌”이라고 말했다. 임영록 지주 회장은 재정경제부 2차관까지 지낸 경제관료 출신으로 케이비금융 사장을 지내다가 회장이 됐다. 금융연구원 출신의 이건호 행장과는 불화를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이 취임 초기부터 많았다.

이번 사태가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출신 등 외부 인사가 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차지해온 관행에 일정한 제동을 거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관심거리다. ‘세월호 참사’ 뒤 정부가 ‘관피아’(관료+마피아)의 관계기관 재취업을 강력하게 금지하기로 한 터에 금융권에선 매우 이례적인 파열음까지 빚어져 여론을 한층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소장은 “이사회 주도로 정당성을 갖춘 최고경영자를 선임할 수 있는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이오 리스크를 줄이는 게 지배구조 개선 과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황보연 송경화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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