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가 전격적으로 상장 추진을 결정했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3세들의 경영승계 작업이 갈수록 빨라지는 모습으로, 지난달 9일 발표된 삼성에스디에스 상장 추진 발표에 이은 2탄격이다.
에버랜드는 2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고 발표했다. 상장 시점은 내년 1분기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랜드는 상장 추진 이유로 투자재원 확보를 통해 지난해 재편된 사업부문들의 경쟁력을 조기에 확보해 글로벌 패션 및 서비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주화 사장은 "에버랜드는 각 부문의 사업경쟁력을 극대화하고 해외진출 확대를 위한 기술, 인력, 경영인프라를 적극 확보해, 글로벌 패션·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는 지난해 9월 제일모직에서 패션사업부를 인수하고, 11월에는 급식 및 식자재유통사업부를 분리했다. 또 건물관리사업부는 에스원에 양도했다.
■ 총 5조원대 자본이득=에버랜드의 상장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3세들은 수조원대의 천문학적 자본이득을 얻게 됐다. 현재 삼성 3세들이 보유한 에버랜드의 주식은 이재용 부회장 25.1%, 이부진·이서현 사장 각각 8.37% 등 모두 41.84%에 달한다. 에버랜드 주식은 대부분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 계열사, 케이씨씨가 보유하고 있어 장외시장 거래가 거의 없어, 케이씨씨가 2012년 삼성카드로부터 주식을 사들인 가격인 주당 182만원을 적용하면 3세들의 주식가치는 1조9천억원에 달한다. 주가는 상장 이후 좀 더 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금융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당 300만원이 현실화되면 3세들의 자본이득은 3조원을 넘게 된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상장으로 인한 2조8천억원 안팎의 예상 이득(장외시장 시세인 주당 19만원 기준)까지 합치면 3세들의 예상 자본이득은 총 6조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 불법 상속 논란=삼성 3세들의 천문학적 자본이득은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 헐값 인수를 통해 얻은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이건희 회장이 1995년 일본 게이오 대학 대학원생이었던 이재용씨에게 61억을 증여한 뒤 세금 16억원 내고 남은 45억원으로 에버랜드 등의 계열사 주식을 헐값으로 사들이며 시작된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의 핵심에 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 오누이의 에버랜드 주식 인수가격은 주당 7750원으로, 케이씨씨 주식매입 가격의 235분의 1에 불과하다. 검찰은 2002년 에버랜드 사건을 기소할 당시 적정주가를 8만5천원으로 책정했고, 법원은 2007년 항소심에서 주당 1만4825원이 적정가격이라고 판결했다.
■ 삼성 향후 행보=금융시장에서는 에버랜드의 상장이 향후 3세 경영승계를 위해 전개될 삼성 계열사의 지주회사 전환과 합병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이건희 회장 자녀들의 경영승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삼성전자·삼성물산·호텔신라·제일기획 등 핵심 계열사들의 지분이 극히 낮거나 아예 없다는 점이다. 이재용 부회장 등은 핵심 계열사의 지분확보와, 이건희 회장 부부가 가진 삼성전자(4.22%), 삼성생명(20.76%) 등 12~13조원 어치의 주식을 상속하는데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삼성 3세들의 상속세 납부에만 6조원 이상의 돈이 필요해 삼성에스디에스 등의 상장 차익만으로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향후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과 합병을 통해 3세들의 핵심 계열사 지분확보와 그룹 지배권 유지를 시도할 것으로 보고,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 왜 지금 상장 발표?=삼성이 에버랜드 상장 추진을 굳이 이 시점에 결의한 점도 관심거리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의 병세와 연관짓는 시각이 많다. 이 회장은 지난달 11일 심장마비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지 20여일이 지났으나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18일 병세가 호전돼 이 회장이 일반병실로 옮겼고, 22일에는 삼성라이온즈의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치는 순간 눈을 떴다고 발표했으나 여전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다. 삼성 안팎에서는 삼성이 3세 승계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설령 병상에서 일어나더라도 정상적인 경영복귀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삼성의 경영승계 관련 후속작업이 계속 빠르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삼성이 지방선거 투표 전날에 에버랜드 상장 추진을 전격적으로 결의한 것은 불법 승계 논란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론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분산되는 시점을 택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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