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정거래법은 운동경기의 ‘규칙’에 비유된다. 경기가 재미있게 진행되고 선수들의 기량이 100% 발휘되려면 심판이 제대로 된 경기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경기장’에서 기업이라는 ‘선수들’이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분명히 정함으로써 공정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이것이 결국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이 24일 연초의 경기회복 조짐을 반기며, 지난해 말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통과가 큰 구실을 한 것 같다고 말한 게 의미 깊게 들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2년 동안 논란을 빚은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같은 시장개혁의 쟁점들이 매듭지어지며, 선수들(재벌)이 경기(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재계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놓고 또다시 출자제한 적용 재벌의 자산기준을 대폭 높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게 실망스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작 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정부 여당의 태도다. 공정위가 24일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며 ‘자산기준’을 소폭 올릴 뜻을 비치더니, 여당 지도부도 25일 “검토해볼 만하다”고 ‘화답’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 여당이 시장개혁을 강조하며 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게 불과 한달도 안 됐는데…”라며 당혹스러워한다. 당시 여당은 출자제한이 투자를 해친다는 주장에 대해 전문기관의 실증분석을 들이대며 왜곡이라고 반박했었다. 공정위도 하위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왜곡문제가 상위 재벌 못지않다며 자산기준 상향조정에 반대했었다.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다는 노무현 정부와 실용주의를 내세운 여당 지도부의 새해 첫발이 자신의 정체성과 시장규칙을 흔드는 ‘갈지자걸음’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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