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제 바꾸며 고용 확대 직원들 삶의 질 높아지고 회사는 생산성 향상 거둬
사회적으론 일자리 창출 기업·병원등 도입 확산 인간존중·노사화합 양극화시대 대안으로
양극화를 넘어 동반성장의 길/④ 확산되는 뉴패러다임 경영
“뉴패러다임을 시작하지 않으면 회사의 미래가 없고, 결국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소기업인 ㈜대명화학의 박오진(45) 사장이 뉴패러다임 혁신모델을 도입한 이유이다. “중소기업도 이제 기술력 없이 연줄, 로비에만 의존해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설비와 연구개발투자, 마케팅이 중요하지만, 주역은 역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투자해서 경쟁력을 높이는게 필수적이죠.”
경북 문경 산양 2공단에 위치한 대명화학은 기저귀 등의 원료가 되는 통기성 필름을 만드는 중소기업. 인원은 100명이 채 안되지만 일감이 밀려 여름휴가를 포기했을 만큼 공장이 잘돌아간다. 회사에 활기가 넘치는 것은 원청업체인 유한킴벌리로부터 주문이 밀려드는 탓도 있지만 지난해 말 뉴패러다임을 도입한 게 큰 요인이다. 박기활(48) 공장장은 “2조2교대 였던 근무조를 3조2교대로 늘리면서, 생산직의 평균 근로시간이 주당 72시간에서 56시간으로 22% 줄었다”고 소개한다. 근로자들서는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휴식시간이 늘어났다. “전에는 일요일 외에는 개인시간이 없었어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생산직인 김기덕(41)씨의 얼굴에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난 기쁨이 배어있다. 뉴패러다임 시행 전 직원은 58명이었지만, 교대제를 확대하면서 지금은 97명이 됐다. 일자리가 무려 67%나 늘어난 것이다. 직원들만 좋은게 아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도 공장을 돌리면서 생산량이 25%나 늘었다. 박 공장장은 “생산량 증가와 시설투자비 절감 효과를 합하면 연간 6억원의 추가 임금비용을 감당하고도 남는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직원들의 늘어난 휴식시간 중 일부를 교육에 할당했다. 덕분에 직원 한사람당 연간 교육시간은 40시간에서 120시간으로 3배가 됐다. 교육시간에는 기술 직무 소양 등 다양한 내용을 소화해 직원들을 지식근로자로 양성한다. 근로자들은 삶의 질이 높아져서 좋고, 회사는 생산성이 높아져 좋고, 사회적으로는 일자리가 늘어 좋은 ‘윈-윈-윈’의 결과인 셈이다.
경기도 평택의 굿모닝병원도 지난 1월 뉴패러다임을 도입했다. 김정용 원장은 “좋은 인재를 확보해서 병원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근무조건을 먼저 개선해야 하는데, 마침 주5일제 시행도 예정돼 있어 뉴패러다임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교대제를 3교대에서 4조3교대로 바꾸면서 직원이 188명에서 205명으로 10% 늘었다. 간호사들의 근무시간이 주당 51시간에서 40시간으로 17% 줄고, 일인당 교육시간은 연간 47시간에서 122시간으로 160% 늘어났다. 송경희 간호부장은 “계획적 생활이 가능해졌고, 교육도 휴식시간이 아닌 정규시간 중에 하니까 모두 만족하고, 교육효과도 좋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경영목표를 달성했다고 40%의 성과급도 지급됐다. 김정용 원장은 “뉴패러다임 도입으로 경기 이남 지역에서 최고병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뉴패러다임센터 출범 이후 뉴패러다임 도입을 위해 양해각서를 맺은 곳은 모두 42곳에 이른다. 대기업에서는 한전과 포스코, 국민은행 등이 평생학습체제를 도입했고 ㈜씨제이가 지난달 말 양해각서를 맺었다. 중소기업으로는 대명화학 외에 풀무원의 음성 두부공장과 경남산청의 동명식품, 대전의 동양강철 등이 참여했다. 현재 이들 중 절반 정도가 컨설팅이 끝나 뉴패러다임 시행에 들어가면서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교대조를 개편한 9개 기업의 경우 일자리가 25%나 늘었다.
뉴패러다임 도입기업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존중 경영철학이다. “6년 전 공장을 처음 인수했을 때부터 직원들이 쉴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56시간이었는데 직원들은 하루 72시간을 일했으니 불법이었던 거죠.” 대명화학 박오진 사장은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찬가지였겠지만, 정말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지난 5월 뉴패러다임을 도입한 경남 산청 동명식품의 박철진 상무는 “직원들이 만족해야 열심히 일할 맛도 나고 회사도 발전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뉴패러다임의 원조인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은 “뉴패러다임은 종업원을 소모품으로 보지 않고 평생학습체제를 통해 인재로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명분으로 대량해고를 손쉽게 하면서 고용불안과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많은 터에 뉴패러다임 기업들의 경영철학은 더욱 대비된다. 뉴패러다임 기업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노사화합이다. 지난 1년반동안 뉴패러다임센터 소장을 맡아오다 지난달말 그만둔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뉴패러다임을 도입하려면 노사가 협력해야 한다”면서 “기업주가 원해도 노조가 반대하면 어렵다”고 강조했다. 뉴패러다임 도입 기업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임금감소를 우려하는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종전 수준으로 맞춰주면서 노사협력을 이끌어냈다. 이같은 노사협력의 바탕이 되는게 투명경영이다. 김정용 굿모닝병원 원장은 “매달 수입과 지출 등 병원의 경영실적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한다”면서 “직원들이 경영사정을 다 아니까 줄다리기를 할 이유가 없고,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유한킴벌리에서도 사내 컴퓨터망을 통해 회사 실적을 매일 공개한다. 신봉호 전 센터 소장은 “기업 경쟁력을 명분으로 한 대량감원이 내수침체를 낳고, 이것이 다시 기업과 경제 전체를 어렵게 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인적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뉴패러다임이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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