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 가이드라인 발표 앞두고
전경련 “재지정 제한·해제” 요구
수용땐 김치 등 품목 대부분 탈락
중기 “적합업종 제도 무력화 의도”
전경련 “재지정 제한·해제” 요구
수용땐 김치 등 품목 대부분 탈락
중기 “적합업종 제도 무력화 의도”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3년만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애초 적합업종 제도에 불만이 많았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적합업종 품목의 재지정을 엄격히 제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전경련의 요구가 수용될 경우 현재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는 100개 품목 대부분이 탈락해, 이 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는 꼴이 된다.
전경련은 이날 중소기업 보호 취지에 맞지 않는 적합업종 품목은 재지정을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전경련이 재지정에 반대하는 품목은 중소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악화된 품목, 무역수지 등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품목이다. 또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시장이 축소된 품목, 2011년 적합업종 신청 때 중소기업 대표 자격에 문제가 있었던 품목도 재지정에 반대한다.
전경련 이상호 팀장은 “적합업종 폐해 품목이 재지정되면, 2006년에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유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인위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중소기업 영세화, 기술 및 품질 저하 등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공격을 받았었다.
전경련의 공세는 11일로 예정된 동반성장위원회의 ‘종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가이드라인’ 발표를 겨냥한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로 인한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2011년에 도입된 뒤 지금까지 두부, 세탁비누, 고추장 등 총 100개 품목이 지정됐다. 적합업종 품목은 대기업의 신규출점 제한, 출점 가능지역 제한 등의 조처가 취해진다. 적합업종은 지정된지 3년마다 재지정 여부를 심사하는데, 올해 검토 대상은 도입 첫해 지정된 82개다.
적합업종 제도는 지난 3년간 운영과정에서 국내 대기업의 역차별 및 외국계 기업의 시장잠식(엘이디등), 적합업종 이외 제도를 통한 중복보호(아스콘), 특정 중소기업의 독과점 발생(세탁비누) 등의 문제와 관련해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동반위는 이런 내용을 재지정 해제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이들 사안은 대부분 전경련이 요구한 내용이다.
하지만 전경련의 추가 요구에 대해서는 무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이동주 본부장은 성장성과 수익성이 악화된 품목에 대한 재지정 해제 주장에 대해 “적합업종 대부분은 성장산업이 아니라 성숙기에 접어들어 성장이 정체돼 있거나 아예 쇠퇴기로 넘어가 사양길을 걷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주장이 수용되면 김치, 면류, 단무지, 세탁세제 등 상당수가 적합업종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일부 문제점이 있으면 개선하면 되는데, 전경련이 마치 제도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제도를 없애자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전경련의 자매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9일 관련 세미나에서 점진적 폐지론을 주장했다. 중소기업계는 전경련이 3년 전에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잠식에 비판적인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제도 도입에 찬성해놓고, 3년만에 폐지론을 펴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이라고 지적한다. 또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포기해 전경련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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