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4월에 500인 이상 기업
사회책임 관련 의무공개 법 통과
국내 기업들 사회책임 인식 낮아
보고서 발간 80곳 ‘홍보성’ 짙어
전문가 “시장 진출에 악영향”
유럽 지침 전혀 모르는 기업도
사회책임 관련 의무공개 법 통과
국내 기업들 사회책임 인식 낮아
보고서 발간 80곳 ‘홍보성’ 짙어
전문가 “시장 진출에 악영향”
유럽 지침 전혀 모르는 기업도
유럽연합(EU)이 최근 기업들의 사회책임 이행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국내 경영계는 이런 사실조차 제대로 모르는 등 대응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있어 향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연합은 지난 4월 중순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들에게 사회책임과 관련된 비재무적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대기업의 비재무적 정보와 다양성 정보 공개 지침’)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 유럽 기업들은 환경, 노동, 인권존중, 부패 및 뇌물방지, 이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정책과 위험, 결과에 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또 해당 기업정책이 없으면 공식 설명 또는 해명을 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책임 이행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유럽연합 전체 차원에서 관련 정보 공개를 법제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일부 국가 차원에서 기업의 사회책임 이행을 규제하는 수준에 그쳤다.
사회책임 관련 글로벌 스탠더드인 ‘아이에스오(ISO)26000’ 한국전문가포럼의 황상규 공동대표는 “이번 법 제정으로 유럽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물론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럽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기업들도 앞으로 사회책임 관련 비재무적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의 이번 조처가 시행령 마련과 각 회원국들의 국내법 개정을 거쳐 향후 1~2년 안에는 실제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사회책임 관련 비재무적 정보를 보고서 형태로 공개하는 기업들의 숫자가 소수에 그치고, 그나마 보고서 내용도 부실한 상태다. 한국 기업들 중에서 사회책임 관련 비재무적 정보를 담은 ‘지속가능보고서(사회책임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곳은 삼성전자, 현대차 등 80여곳에 그친다. 지속가능보고서를 내는 대기업들도 인권, 노동 등 핵심 내용들을 제대로 담지 않고 있다. 또 담합, 불공정하도급행위 등 법위반행위로 인해 정부와 법원의 처벌을 받은 내역도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계열사 3곳에서 지속가능보고서를 내고 있는 한 재벌그룹의 사회공헌 책임자는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 경우 국민의 비판을 들을 수 있는 불리한 내용은 빼고, 기업이 잘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는 내용만 담는 ‘홍보형 책자’ 성격이 짙다. 보고서 작성도 기업이 직접하기보다 전문 대행업체에 맡기는 곳이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신태중 좋은기업센터 기획국장은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보면 경영성과와 사회공헌성과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룬 반면 노동문제와 노사관계 등 삼성이 비판을 받는 사회성과지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에스오 26000 한국전문가포럼이 밝힌 국내 주요기업의 사회책임 이행 진단 결과를 보면 인권, 노동, 환경 분야의 경우 A 등급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B~C 등급에 그치며, 일부는 낙제점인 D 등급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2010년 10월 ‘ISO 26000’이 출범한 뒤에도 국내 대기업들은 사회책임 경영이 강제사항이 아니라 자발성에 근거한 권고사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시간낭비를 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황상규 대표는 “앞으로 삼성의 무노조경영과 백혈병 문제, 현대자동차의 불법 파견(비정규직) 문제처럼 기업의 사회책임 이행에 반하는 이슈들이 한국의 네번째 수출시장인 유럽 진출과 관련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경영계가 유럽연합의 이런 움직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은 심각성을 더한다. 대기업의 한 사회공헌 책임자는 “(유럽연합의 움직임에 대해)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국내 기업들의 사회책임경영을 맡고 있는 대한상의의 지속가능경영원과 전경련 관계자들도 “대략적인 소식은 들었으나 유럽연합 조처의 세부 내용과, 시행시기, 국내 기업들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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