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대리점. 한겨레 자료사진. 정용일 기자
[현장에서] 권장 단말기·요금제의 함정
단말기 보조금 지급 실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이동통신 유통점 사장이 이통사로부터 ‘정책’ 문건이나 단말기 단가표 등을 받을 때마다 내게 보내준다. 여기서 정책이란 가입자 유치 수수료 금액을 말한다.
그가 최근 보내준 정책 문건을 살펴보다가 ‘해당 요금제 개통 시에만 정책 적용’이란 문구를 발견했다. 그는 “정책 문건마다 붙어있는데 그동안 못봤냐? 뜻은 문구 그대로다”라고 핀잔을 준다. 그는 “바로 이 정책이 문제인데, 왜 정부와 언론은 이를 문제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통사들은 정책을 통해 유통점들로 하여금 고객들한테 특정 단말기·요금제·부가서비스를 권하게 한다. 지정된 단말기와 요금제에는 수수료를 높게 얹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낮게 주는 식이다. 당연히 최신 고가 단말기와 고가 요금제에 높은 수수료가 얹어진다. 유통점 사장이 최근 보내준 정책 문건을 보면, 단말기 기종과 요금제별로 수수료 차이가 대당 최대 100만원 이상 난다.
유통점들은 당연히 가능하면 수수료가 높은 것을 팔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다. 이통 요금제는 이통사 요금담당자들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다. 단말기도 수십종이 팔리고 있다. 더욱이 나날이 새로운 게 나오고 있다. 이용자가 자신의 처지와 이용 행태를 살펴 요금제와 기종을 고른다는 것은 말이 쉽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고 손님! 그거 완전히 구형이예요. 얼마전 배터리 폭발했다는 기사 못보셨나 봐요?”라고 핀잔을 듣기도 한다.
결국 이용자는 “저한테 맞을만한 것으로 하나 골라주세요”라고 선택권을 넘긴다. 유통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즘은 이 단말기가 대세다”, “이 요금제를 선택한 뒤 이런 저런 할인을 받으면 고객님이 처음 골랐던 요금보다 싸다”는 등의 말로 특정 단말기와 요금제를 고르게 한다. 때로는 “공짜로 주고 싶은데, 방통위 조사 때문에 고민”이라며, 단말기 값을 할부로 처리하면 할부금만큼을 다달이 통장으로 입급시켜주겠다는 ‘거짓말’까지 동원한다.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미 단말기 박스는 뜯겨지고 신분증은 넘겨준 상태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눈이 어두워 문자메시지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어르신이 최신 스마트폰을 고르고, 쓰던 단말기를 개통하러 갔다가 그냥 줘버리고 최신 스마트폰을 들고 오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이통사들은 “장사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다 가계통신비 부담 애기가 나오면, 책임을 이용자한테 돌린다. 이용자들의 허영심과 과소비 탓이란다.
100만원 가까이 하는 스마트폰을 1년도 안쓰고 새 것으로 바꾼다느니, 문자메시지도 제대로 이용할 줄 몰라 음성통화만 조금씩 하는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느니 하면서 이용자들의 행태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정책 담당자들도 이통사와 같은 주장을 편다.
한마디로 이통사들은 수수료로 유통점들한테 사실상 불완전 판매를 종용하고, 유통점들은 때로는 거짓말과 사기까지 치면서 이용자들에게 비싼 요금제와 단말기를 권해놓고, 역풍이 불면 ‘당황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허영심과 과소비 탓으로 돌린 뒤, 끝!’이라고 외치는 꼴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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