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선임기자
현장에서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노대래 위원장이 국내 건설사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담합 업체에 대한 정부 입찰자격 제한제도의 완화 내지 폐지를 소관부처에 요청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경실련과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23일 노 위원장의 발언이 담합에 면죄부를 주고 불법을 부채질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정의당의 박원석 의원은 대통령에게 노 위원장을 즉시 해임할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노 위원장은 공정위 간부회의에서 발언취지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노 위원장이 지난 20일 삼성·현대 등 대형 건설사와 만나 한 얘기는 당일 언론에 배포된 공정위 보도자료에 잘 나와있다. 그는 “요즘처럼 담합사건이 연이어 처리되는 경우에는 대규모 국책사업 발주에 지장을 초래하고 건설업계의 미래발전을 제약할 수 있다”면서 “국가계약법령에 공정위에서 담합으로 제재하면 입찰자격을 의무적으로 제한하도록 되어 있는 것에 대해 기재부 등 소관부처에 제도개선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담합 업체의 정부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공적’으로 불리는 담합의 근절을 위한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분석을 보면 지난 3년간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사건 781건 중 75.54%(590건)가 담합일 정도로 답합이 관행화되어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공정경쟁질서 확립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공정위 수장이 입찰자격 제한제도의 완화를 들고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그동안 공정위의 담합 제재를 두고 ‘솜방망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노 위원장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 경실련의 2002~2012년 건설사 담합사건 분석을 보면 담합 관련 매출액이 16조5천억원이었으나 과징금은 2900억원으로 1.8%에 불과했다. 과징금을 관련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규정이 무색하다.
공정위 주변에서는 노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실세’로 불리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잇달아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 완화 발언을 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공정위원장 중에는 권력에 대한 눈치보기를 하다가 실족을 한 뼈아픈 사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동수 위원장이 대통령의 물가관리 지시를 받고 담합조사를 가격통제(물가억제) 수단으로 악용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결국 공정위의 국제적 평판까지 떨어뜨렸다.
경제부처 안에서는 이번 일의 근본책임을 인사권자인 대통령한테서 찾는 시각도 있다. 최근 잇단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실패처럼 잘못된 공정위원장 인사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간부는 “공정위가 본래 역할에 충실하려면 위원장 인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면서 “노 위원장은 성장을 중시하는 기획재정부에서 30년 이상 관료생활을 했고, 지금도 개각 때마다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경제부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리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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