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0월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이 총재는 “최근 금융·경제 상황과 지표 수준을 검토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 완화’ 종료를 선언한 지 하루 만인 10월31일 일본은행(BOJ)이 전격적으로 양적완화 확대를 결정하면서 한국 경제의 대외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돈풀기 정책 강화는 엔화 약세(엔저)를 가속화시켜, 최근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출에 추가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와 내년으로 예상되는 정책금리 인상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유출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요인이다.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미진한 상황에서 중국·미국·일본 등으로부터 잇따라 터져나온 대외변수들로 인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한층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31일 일본 중앙은행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연간 자산 매입 규모를 기존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리는 양적완화 확대 방침을 발표하자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112.48엔까지 올랐다. 2007년 12월 이후 6년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달러 강세, 엔화 약세로 원화값도 약세를 보였으나, 엔화 약세 폭이 더 커서 원-엔 환율은 951원까지 떨어졌다. 시장에선 원화에 비해 엔화 약세가 더 두드러져 추세적인 원-엔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엔화의 상대적인 약세는 일본과 수출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들의 채산성을 떨어뜨리고, 길게는 생산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은 아베노믹스로 엔화가 약세로 돌아선 2013년 4월 이후에도 가격 인하에는 소극적이고 이익 확보에 주력해왔으나, 추가 엔화 약세로 수출단가 인하까지 단행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 악화 우려가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엔화 약세가 또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수출은 엔화 약세가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의 성장 둔화 영향으로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중국의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7.3%(전년동기 대비)로 떨어졌다. 금융연구원 자료를 보면, 중국 성장 둔화로 올해 들어 9월까지 한국의 대중국 수출는 전년동기 대비 0.7% 줄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대중국 수출 증가율이 연평균 18.3%였던 점을 고려하면, 대중국 수출 둔화가 구조적으로 고착됐다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일본의 양적완화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양적완화를 자극해 세계적인 통화 약세 경쟁을 또 한번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에이치에스비시(HSBC)는 12월께 유럽중앙은행이 추가로 양적완화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00%로 인하한 데 이어, 추가로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원화 가치가 떨어져 엔화 약세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이른 시일 안에 기준금리를 1.75%로 인하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통화정책과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내년 중 금리 인상 시기를 엿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가 줄어들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뺄 유인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경우 자금유출 현상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구나 저금리 심화에 따라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전셋값이 급등하는 부작용도 이미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탓에 경제·통화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뾰족한 정책 대응을 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모니터링을 충실히 할 수밖에 없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며 “지금 상황에서 우리도 금리를 더 낮추거나 양적완화를 하거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김학균 케이디비(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과 일본이 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통화정책이 한계가 분명히 있다. 어느 쪽을 따라한다기보다는 우리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스텝을 밟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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