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파수꾼’으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집권 7년 동안 전문성·독립성·도덕성을 제대로 못갖춘 인물들로 임명되면서, 공정위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공정위원장에 정재찬 전 부위원장을 내정한 것도 티케이(TK·대구경북) 출신을 우대한 지역편중 인사로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에 한계를 안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원장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라는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3대 조건으로는 공정거래 분야의 전문성,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도덕성이 꼽힌다. 특히 공정위가 기업의 불공정행위 조사, 재벌의 경제력 집중 감시 등의 핵심업무를 수행하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임명된 6명(내정자 포함)을 살펴보면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인사를 찾기가 어렵다.
이명박 정부에서 첫 위원장을 맡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대표적인 엠비(MB) 측근인사로, 대통령의 친기업정책을 따르다보니 공정위의 기업조사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다음 정호열 성균관대 교수(법학)는 건설사들의 4대강 입찰담합을 적발하고도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며 사건처리를 늦췄다. 세번째인 김동수 위원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공정위 업무 경험이 없었다. 또 대통령의 물가관리 지시에 따라 공정위의 기업조사권을 남용하다가 해당 기업들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내정한 한만수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국외에 수십억원의 비자금 은닉 사실이 드러나며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고 사퇴했다. 한 교수는 박 대통령의 씽크탱크(두뇌집단)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의 구성원이서, 전형적인 ‘캠프인사’ 사례로 꼽힌다. 또 교수를 맡기 이전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오래 기업관련 사건을 맡아, 공정위 수장으로서는 부적합했다. 박 대통령이 두번째로 임명한 노대래 위원장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기획원 사무관 시절에 3년반 동안 공정위 업무를 맡은 경험이 있어 초보는 면했다. 하지만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정책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한계를 보였다.
박 대통령이 세번째 임명한 정재찬 내정자는 23년간 공정위에 재직하며 부위원장, 상임위원 등을 두루 거쳐 전문성을 갖췄다. 또 재산이 3억원에도 못미칠 정도여서 벌써 인사청문회 통과를 낙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정 내정자는 전형적인 티케이(경북 문경) 출신으로, 공정위가 권력의 입김에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공정위 전직 고위간부는 “지난 6월 개각 때부터 노 위원장의 후임으로 티케이 쪽에서 그를 밀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2011년 초 상임위원에서 부위원장으로 승진할 때도 ‘티케이 인사’ 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정위 수장에 제대로 자격을 갖춘 인사가 임명되지 않은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시장경제의 파수꾼이라는 공정위 본연의 기능을 존중하기보다 여러 경제부처 중 하나로 바라보고, 친기업과 경제활성화 등 정부의 경제정책을 뒷받침하도록 주문한다. 두 대통령이 임명한 공정위원장의 평균 재직기간이 1년7개월로 임기(3년)의 절반에 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의 이승희 국장은 “공정위가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독립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친기업·경제활성화 등)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에 종속돼 고유기능을 일관되게 수행하는데 한계를 보인 것은 물론 존립 근거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원장이 제역할을 하려면 전문성과 엄정한 법집행 의지 갖춘 인물로 임명하고,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임기 3년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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