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재찬 공정위원장 내정자가 부위원장 재직 시절에 국회의 경제민주화 법안 심사 과정에서 소신 발언을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4일로 예정된 정 내정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이 한 말이다. 이는 정 내정자가 2011년초~2014년초 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보여준 모습에서 비롯됐다. 김 의원은 “(쟁점사안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 그냥 ‘의원님들이 결정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답변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에 대한 국회 검토 과정에 전문가로 참여했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정 내정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어 너무 놀라웠다”고 털어놨다.
‘소신’과 ‘원칙’을 갖고 ‘책임’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우려는 정치권·학계 뿐만 아니라 ‘자기 식구’인 전현직 공정위 출신들로부터도 적지않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 출신 인사들한테서 “과거 국장이나 상임위원 시절에도 어떤 일이든 앞에 나선 적이 없었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2011년 초 취임한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물가관리를 위해 공정위 조사권을 총동원할 때 정 내정자가 일정한 ‘브레이크’ 구실을 하지 못한 대목도 있다.
당시 업계는 물론 공정위 안에서도 “경쟁촉진 역할을 하는 공정위가 물가단속을 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당국이 아니라고 하는 직원은 인사조처하겠다”며 밀어붙였고, 정 부위원장은 외부강연에서 “담합을 통한 불법적 가격인상을 방지한 것이지 가격을 직접 통제한 것은 아니다”며 옹호했다. 공정위 출신 인사는 “결국 공정위는 ‘물가관리위원회’라는 오명을 썼고, 정유사 원적지 답합을 포함해 무리하게 제재한 사건들은 법원에서 패소하며 망신을 당했다”고 말했다.
2012년 공정위가 4대강 입찰담합사건을 늑장처리하고, 이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내부문건이 폭로됐다. 시장경제 질서를 해치는 담합의 적발은 공정위의 핵심업무다. 김동수 위원장은 곤경에 빠졌고, 결국 대선 직후인 2013년 초 경질됐다. 하지만 늑장처리를 방조한 정 부위원장은 아무 책임도 지지않고, 3년의 임기를 채웠다.
공정위 일각에서는 “부위원장이 위원장의 뜻에 반해 소신을 펴기는 어렵다. 정 내정자가 위원장을 맡으면 책임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인다. 또 전직 고위간부는 “성격이 소심하고 대가 약한 면은 있지만, 부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변호한다. 하지만 정 내정자가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소신 위원장’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할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정 내정자의 인사에 여당의 지역기반인 대구·경북(TK) 출신이라는 점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우려를 더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대신 경제활성화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의 입김에 맞서 소신행보를 하기가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정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우려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함께 향후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확실한 약속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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